'탈북소녀' 최현미 타이틀 방어…"제 이름 기억해 주세요"
“제 성은 최씨이고요. 이름은 현미, 드러날 현자에 아름다울 미자입니다. 꼭 기억해주세요.”

세계복싱협회(WBA) 여자 페더급 챔피언인 최현미(21·동부은성·사진)는 지난 17일 타이틀 5차 방어에 성공한 뒤 링 아나운서로부터 마이크를 건네 받아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또박또박 말했다. 최현미는 이날 서울과학기술대 특설링에서 세계복싱평의회(WBC) 아시아 챔피언인 사이눔도이 피타클론(23·태국)을 5라운드에 TKO로 제압하고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그러나 최현미에게는 승리의 감격보다는 사람들이 곧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이 앞섰다.

최현미는 1990년 평양에서 태어나 2004년 가족과 함께 북한을 탈출해 그해 7월 한국에 정착했다. 2006년 아마추어 무대를 거쳐 2007년 프로로 전향한 최현미는 2008년 10월 WBA 챔피언결정전에서 쉬춘옌(중국)을 심판 전원일치 판정으로 꺾고 챔피언 벨트를 찼다.

최현미는 ‘탈북소녀’ ‘한국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불리며 매스컴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험난한 여정을 거쳐 남한 땅을 밟은 지 4년 만이었다. 그러나 주변의 관심은 잠잠해졌고 최현미는 후원자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워야 했다. 챔피언 등극 이후 1년 안에 방어전을 치르지 못하면 타이틀을 박탈당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다행히 서울 노원구청과 윤승호 성균관대 스포츠과학부 교수, MBC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의 도움과 국민체육진흥공단 등의 지원으로 1~4차 방어전을 치렀지만 여전히 국내 기업들은 최현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5차 방어전 신청 기간을 열흘 앞둔 지난 9월19일 WBA로부터 ‘방어전을 치르지 못하면 챔피언 벨트를 반납해야 한다’는 통지문을 받았다. 최현미의 아버지 영춘 씨(46)는 WBA를 찾아가 사정한 끝에 12월29일까지 시간을 벌었다. 그는 각 기업과 시민단체,구청 등을 다닌 끝에 지난 10월 이름이 공개되길 원하지 않은 한 대기업의 후원을 받아냈다.

최현미는 “타이틀 박탈 얘기는 최근에야 알게 됐다”며 “아버지가 선수는 운동에만 전념해야 한다면서 그런 얘기는 전혀 하시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한순간이 아니라 꾸준하게 여자 복싱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개인적인 바람을 피력했다. 최현미는 내년에 WBC 통합 타이틀 도전을 계획하고 있다. 모든 체급의 석권에 도전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