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디자인 기술을 베트남에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기업과 학교간 교류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하나요?"

지난 13일 베트남 호치민 시 모벤픽 호텔. 2층 컨벤션홀에서 열린 '가구산업 디자인 세미나'에서 강의가 끝나자마자 청중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행사 진행자는 '이번이 정말 마지막 질문입니다'를 몇 번이고 반복했지만 질문 공세를 막을 순 없었다.

조아라 쿤디자인 대표를 비롯해 주홍규 주디자인 대표, 조숙경 서일대학교 교수 등 강사진은 거듭된 질문에 진땀을 흘렸다. 이들은 국내 가구 디자인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들로 꼽힌다.

베트남 가구산업은 덩치에 비해 독창적인 디자인 가구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보니 베트남 가구업체 관계자들은 베트남 가구의 경쟁력을 찾기 위해 한국의 가구디자인 전문가들의 말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베트남에서 가구산업은 수출 10위 권에 드는 품목이다. 하지만 자체 브랜드로 수출하는 경우가 전무하다. 대부분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다. 생산 제품 주문국은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다. 때문에 경기 불황으로 주문량이 급감한 최근 몇 년간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일부 건실한 베트남 가구업체를 중심으로 'OEM 방식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브랜드를 구축하겠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 가구업체에 숙련공은 있지만 실력 있는 디자이너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디자이너를 교육시키는 대학이나 교육 과정이 최근에야 개설되는 수준이다. 베트남의 가구협회도 이를 인정하고 한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트란쿽만 호치민가구협회(Handicraft and Wood Industry Assosiation of HCM) 부회장은 "베트남의 가구산업 종사자들은 25만 명에 달하고 우수한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다" 면서도 "마케팅과 디자인 능력이 부족해 성장이 지체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아세안센터는 베트남 가구산업이 필요로 하는 마케팅과 디자인 개발을 위해 전문가들을 데려왔다. 강사진들은 가구 디자인의 필요성부터 국제박람회 참여 방법, 좋은 디자인과 그렇지 않은 디자인에 대한 설명을 4시간에 걸쳐 소개했다.

◆韓 가구디자이너, 베트남 업체에 조언…"초기엔 디자인 아웃소싱해야"

조아라 쿤디자인 대표는 한국 디자인어워드(2005년·2007년)에서 수차례 수상한 경력을 갖고 있다. 2003년 설립된 쿤디자인은 아동가구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디자인 가구를 만들고 있다.

조 대표는 베트남 가구업체 관계자들에게 자신만의 '디자인'을 가지라고 주문했다. 그는 △디자인의 컨셉트를 잡고 △고객층을 명확히 하는 타깃을 정하며 △디자인을 점진적으로 확충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베트남 업체의 경우 가구공장 내에 전문인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알고 있다" 며 "내부에서 디자이너를 키우려고 욕심내는 것도 괜찮지만 초기엔 디자인을 아웃소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디자인을 이용하는 이른바 '산학협력'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가구 및 인테리어 컨설턴트인 주홍규 대표는 디자인 가구 트렌드를 조사하는 방법을 강의했다. 그는 "트렌드 조사를 통해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과 시장의 변화를 알 수 있다" 며 "이를 분석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가구를 만들라"고 제안했다.

조 교수는 '디자인은 창의성의 산물'이라고 개념을 정리한 뒤 디자인의 좋은 사례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비교, 분석했다. 수백장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구체적인 디자인 사례를 강의해 참석자들의 공감을 샀다.

한-아세안센터 관계자는 "베트남 가구산업은 규모에 비해 디자인 차별화가 적은 편" 이라며 "이번 세미나를 통해 실무자들이 가구 디자인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고 문화, 관광, 인적 교류의 장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진지한 실습에 강사진도 '깜놀'

세미나에 이어 가구 디자인을 실제 적용하는 실습 시간이 이어졌다.

평범한 디자인을 창의적인 디자인으로 진화시키는 방법은 잡지의 스크랩을 통해 이뤄졌다. 평범한 의자와 식탁에 스케치를 하거나 잡지의 한 부분을 찢어 붙여 독창적인 디자인 가구를 완성시켰다.

이날 실습을 주도한 주 대표는 "가구 디자인에 화려한 디테일과 감각적인 무늬들이 인상적이었다" 며 "그러나 수출을 목표로 하는 디자인을 하자면 보다 간결하고 모던한 디자인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조 교수는 나무젓가락과 실, 본드 등으로 미니 가구를 만들도록 했다. 베트남 가구업체 관계자는 "그림으로 그려본 디자인을 미니어쳐로 처음 만들어본다" 며 "간단하지만 구조를 미리 가늠해볼 수 있어 재밌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베트남 가구회사 사장들의 진지한 실습 자세에 놀랐다" 며 "자체 가구 디자인에 대한 의욕을 읽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날 완성된 작품 중 우수작에는 소정의 기념품이 전달됐다.

호치민=한경닷컴 김하나 기자 ha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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