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 "아들 세명 중 가장 냉철한 성격"…승부욕·외모 '김정일 아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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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누구인가
둘째부인 고영희가 생모…16세때 佛·스위스 유학…김정일처럼 '영화광'
형제끼리 농구경기 후 정철 "수고했다"…정은, 팀원에 "반성하라"
2009년부터 후계자 수업…黨·軍 모든 보고 받아…당 간부 무차별 해고
둘째부인 고영희가 생모…16세때 佛·스위스 유학…김정일처럼 '영화광'
형제끼리 농구경기 후 정철 "수고했다"…정은, 팀원에 "반성하라"
2009년부터 후계자 수업…黨·軍 모든 보고 받아…당 간부 무차별 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과 동시에 북한이 김정은(28) 띄우기에 나섰다.
김 위원장의 3남 김정은은 장례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형들은 장례위원 명단에 끼지도 못했다. 북한 언론은 우상화에 나섰다. 조선중앙통신은 19일 “김정은은 혁명과 국가건설을 승리로 이끌 뛰어난 이상가”라고 치켜세웠다. 북한 관영 언론이 김정은을 직접 극찬한 것은 처음이다.
김정은은 2009년 후계자로 지명됐으며 현재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후계자 지명 후 그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인민군 대장 등을 겸직하며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보위부 등 모든 보고가 김정은을 통해 김 위원장에게 올라갔으며 당 고위급 간부 인선에도 직접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9년에는 경제문제 해결을 위한 워킹그룹을 이끌었으며 몇몇 건설 프로젝트도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그는 후계자 수업과정에서 김정일이 참여하는 모든 행사를 수행하기도 했다.
김정은은 1983년생으로 김 위원장과 그의 두번째 부인 고영희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16세 때 프랑스를 거쳐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텔레그래프는 “김정은이 스위스 베른 국제학교에서 유학하면서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도 배웠다”고 전했다. 유학 당시에는 ‘박운(박은)’이라는 가명으로 생활했다. 영국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김정은은 유학 당시 마이클 조던, 장클로드 반담 등을 좋아했고 유머감각도 뛰어났다. 2001년 귀국한 그는 2006년 12월까지 김일성군사종합대에서 군사학을 공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이 두 명의 형을 제치고 후계자가 된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그의 승부욕, 리더십을 김정일이 높게 평가했을 것이란 관측만 나오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는 “세 아들 가운데 가장 냉철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김정은이 김 위원장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이 외모와 성격면에서 자신을 가장 많이 닮은 정은을 후계자로 지명했다는 것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아사히신문은 “김정은은 거침없는 성격이며 누구한테도 지지 않으려고 했다”며 “아버지가 부르면 그는 어느 누구보다 빨리 달려갔다”고 전했다.
형들이 김 위원장의 눈에 들지 못한 것도 배경이 됐다.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거론되던 김정남은 2001년 5월 일본으로 불법 입국했다가 일본 당국에 의해 억류되면서 김 위원장의 눈밖에 난 것으로 알려졌다. 차남 김정철은 성격이 유약해 후계자로 지목받지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냉철한 승부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정은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당 간부들을 무차별 해고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농구경기 일화도 유명하다. 농구경기 후 형 정철은 팀원들에게 “수고했다”고 말한 반면 승부욕이 강한 김정은은 팀원들과 오랜 시간 ‘반성회’를 가졌다는 것이다. 지지통신은 “(정은의) 자기 중심적인 성격 때문에 부하들은 그를 두려워하고 있다”며 “화가 나면 주위를 의식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후지모토는 자서전에서 “정은은 성격이 난폭한 데다 이중적인 경향도 있다”고 전했다.
한편 20대 후반의 외국유학을 경험한 김정은이 보수적인 북한체제 내에서 권력을 제대로 승계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당분간 북한이 김정은을 중심으로 뭉치겠지만 불투명한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분쟁 분석 전문기관인 ‘국제위기그룹(ICG)’의 대니얼 핑크스톤은 “북한은 그동안 권력 이양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단기적으로 김정은을 중심으로 뭉치면서 그가 내부 권력을 지휘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도 “김정은은 20대 후반에 불과하고 지도자 준비기간이 많지 않아 신뢰성에 대해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용준 /장성호 기자 junyk@hankyung.com
김 위원장의 3남 김정은은 장례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형들은 장례위원 명단에 끼지도 못했다. 북한 언론은 우상화에 나섰다. 조선중앙통신은 19일 “김정은은 혁명과 국가건설을 승리로 이끌 뛰어난 이상가”라고 치켜세웠다. 북한 관영 언론이 김정은을 직접 극찬한 것은 처음이다.
김정은은 2009년 후계자로 지명됐으며 현재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후계자 지명 후 그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인민군 대장 등을 겸직하며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보위부 등 모든 보고가 김정은을 통해 김 위원장에게 올라갔으며 당 고위급 간부 인선에도 직접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9년에는 경제문제 해결을 위한 워킹그룹을 이끌었으며 몇몇 건설 프로젝트도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그는 후계자 수업과정에서 김정일이 참여하는 모든 행사를 수행하기도 했다.
김정은은 1983년생으로 김 위원장과 그의 두번째 부인 고영희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16세 때 프랑스를 거쳐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텔레그래프는 “김정은이 스위스 베른 국제학교에서 유학하면서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도 배웠다”고 전했다. 유학 당시에는 ‘박운(박은)’이라는 가명으로 생활했다. 영국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김정은은 유학 당시 마이클 조던, 장클로드 반담 등을 좋아했고 유머감각도 뛰어났다. 2001년 귀국한 그는 2006년 12월까지 김일성군사종합대에서 군사학을 공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이 두 명의 형을 제치고 후계자가 된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그의 승부욕, 리더십을 김정일이 높게 평가했을 것이란 관측만 나오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는 “세 아들 가운데 가장 냉철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김정은이 김 위원장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이 외모와 성격면에서 자신을 가장 많이 닮은 정은을 후계자로 지명했다는 것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아사히신문은 “김정은은 거침없는 성격이며 누구한테도 지지 않으려고 했다”며 “아버지가 부르면 그는 어느 누구보다 빨리 달려갔다”고 전했다.
형들이 김 위원장의 눈에 들지 못한 것도 배경이 됐다.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거론되던 김정남은 2001년 5월 일본으로 불법 입국했다가 일본 당국에 의해 억류되면서 김 위원장의 눈밖에 난 것으로 알려졌다. 차남 김정철은 성격이 유약해 후계자로 지목받지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냉철한 승부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정은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당 간부들을 무차별 해고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농구경기 일화도 유명하다. 농구경기 후 형 정철은 팀원들에게 “수고했다”고 말한 반면 승부욕이 강한 김정은은 팀원들과 오랜 시간 ‘반성회’를 가졌다는 것이다. 지지통신은 “(정은의) 자기 중심적인 성격 때문에 부하들은 그를 두려워하고 있다”며 “화가 나면 주위를 의식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후지모토는 자서전에서 “정은은 성격이 난폭한 데다 이중적인 경향도 있다”고 전했다.
한편 20대 후반의 외국유학을 경험한 김정은이 보수적인 북한체제 내에서 권력을 제대로 승계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당분간 북한이 김정은을 중심으로 뭉치겠지만 불투명한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분쟁 분석 전문기관인 ‘국제위기그룹(ICG)’의 대니얼 핑크스톤은 “북한은 그동안 권력 이양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단기적으로 김정은을 중심으로 뭉치면서 그가 내부 권력을 지휘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도 “김정은은 20대 후반에 불과하고 지도자 준비기간이 많지 않아 신뢰성에 대해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용준 /장성호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