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 "일단 김정은 체제로 전환…군부 반발 가능성 주시해야"
대북 전문가들은 대체로 북한이 김정은 체제로 무리없이 전환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남북대화나 6자회담 등 북한과의 대화채널이 당분간 막힐 수 있는 만큼 정부는 사태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북한 내부 사정의 불확실성으로 작용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도 여전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최진욱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소장은 19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후계구도에 대해 “일단 김정은 체제로의 전환과정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이 과정에서 북한 군부 및 당과 문제도 있고, 김정은 후견인 그룹과 군부의 갈등도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이 그동안 준비를 많이 해온 것 같다”며 “이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과 김경희 경공업 부장을 포진시키는 한편, 조선노동당도 정치국부터 시작해 당 기능을 재가동시켰으며, 군의 충성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김정은 체제로의 전환을 낙관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도 “김정은으로의 후계 작업은 거의 완성돼 있고 대안세력이 없어 별 무리없이 갈 것”이라며 “개혁파와 군부 강경파 간 갈등이 전쟁으로 나타날 가능성은 희박하고, 주민 반란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내부 동요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다고 본다”며 “김정은 후계 체계가 작년부터 작동되고 있고, 실질적으로도 권력체제를 뒤흔들 만한 군부 내 반발기류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순직 현대경제연구원 통일경제센터장 역시 “북한 내 군부는 인민의 지지를 받기 힘들고, 국제 여론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쉽게 나서기 힘든 상황”이라면서 “장의위원회 구성에 김정은이 맨 위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김정은 체제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과도기적 체제로 ‘유훈통치’ 얘기도 나온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북한은 김일성 시신을 미라로 만들어 ‘금수산기념궁전’에 안치하고, 김일성 영생탑을 건설하는 한편, 주체연호와 태양절을 제정하는 등 유훈통치 체제로 접어들었다. 김 주석이 사망하고 3년이 지난 1997년 10월에서야 김정일은 노동당 총비서로 추대되며 본격 통치에 나섰다.

반면 연하청 KDI(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김일성은 죽기 1년 전 김정일에게 국방위원장직을 이양했는데, 지금은 부위원장이어서 상황이 조금 다를 수 있다”며 “김 위원장 사망은 이틀 뒤 발표됐는데, 이런 의사결정을 누가 했고, 장례식 절차와 장례위원 선정 등을 누가 결정했는지 더 두고봐야 한다”고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남북회담이나 6자회담 등은 일단 올스톱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도 내부 문제를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예정된 회담 등은 연기될 것”(홍순직 센터장)이라는 것이다. 문 교수는 “내부 사정이 정리되는 게 우선으로 북한이 대남 강경책을 이어갈지는 더 두고봐야 한다”고 했다.

북한은 천안함 폭침 등으로 주변국 중에 유일하게 기대고 있는 중국에 더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은 작년에 두 차례 방중에 이어 올해 5월 중국을 방문하는 등 1년 새 세 번이나 방중했다. 또 올 상반기 북·중 교역은 25억800만 달러로 이미 작년 같은 기간 12억8800만 달러의 두 배를 넘어 섰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 기조도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은 김 위원장과 똑같은 색깔이라 우리 정부는 시간을 두고 지켜보며 외부 충격을 줄이는 데 노력해야 한다는 조언이 많다.

홍현익 실장은 “중국의 대북 지원이 많지 않을 경우 북한에서 왕자로 큰 김정은이 북한 주민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핵실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연하청 교수는 “북한이 조문을 받지 않겠다고 한 것은 아직 내부 정리가 안 됐다는 뜻”이라며 “누가 의사 결정을 하는지 우리 정부는 우선 파악하고, 대화 채널을 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북한의 후계구도가 확실시된 뒤에야 남북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했고, 김용현 교수도 “우리 정부는 지금 상황을 차분하게 지켜보며, 군사적 시위에 대한 대비를 하면서도 남북관계를 풀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재후/도병욱/허란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