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코리아에 근무하는 김모 과장은 얼마 전 스웨덴 본사 직원들과 전화통화를 하다 깜짝 놀랐다. 최근 볼보가 단행한 특수지형(험지)용 트럭 사업부문 감원(350명)이 화제에 올랐는데, 현지 직원들 반응이 우리와는 사뭇 다르더라는 것. “정리해고를 무조건 반대하는 한국과 달리 선선히 받아들이더군요. 심지어 정리해고는 젊은 직원들 중심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얘기까지 하더군요.”

젊은층을 대상으로 해고를 자유롭게 하는 스웨덴이 부러워 이 사례를 인용하는 것은 아니다. 중산층 육성의 핵심인 일자리, 그것도 일자리 이동의 유연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역사적으로 경제위기는 중산층부터 위협한다. 대규모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 증가는 중산층에 공포로 다가온다. 특히 소득과 저축 기반이 약한 한국 중산층은 실직을 당하거나 정규직에서 탈락할 경우 곧장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경우가 많다. 동일 직장 또는 업종에서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드물기 때문이다.

반면 스웨덴 사람들이 젊은층에 대한 정리해고를 크게 걱정하지 않는 이유는 앞으로 재취업 기회가 많다고 생각해서다. 연차가 낮을수록 회사 기여도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장기 근무자보다 우대할 이유가 없다는 인식도 깔려 있다.

해고를 당한 당사자들도 크게 불안해하지 않는다. 회사는 1년 동안 통상 임금의 100%를 보전해주고 재취업 교육을 책임진다. 1년 이내 취업이 되지 않으면 정부가 다시 1년 동안 기존 임금의 80%를 지원한다.

덴마크도 재취업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기로 유명하다. 유연한 고용시장, 탄탄한 사회안전망, 적극적 직업훈련 등 이른바 ‘황금 삼각형(골든 트라이앵글)’ 모델로 불린다. 기업들은 해고와 채용이 자유롭고, 정부는 재취업 교육자에게 일정 기간 생계를 보장한다. 실업자의 60% 이상은 교육을 받으며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덴마크의 대표 장난감 기업인 레고는 비디오게임 출현으로 장난감 판매가 급감하면서 1998년 사상 첫 적자를 낸 후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추락했다. 결국 2004년 직원 8000명 중 절반에 가까운 3500명을 해고했다. 하지만 강력한 구조조정 효과로 회사는 1년 뒤인 2005년 흑자로 전환했고, 신사업 개발에 성공한 이후 일자리의 대부분을 복원했다.

이처럼 재취업 시스템이 잘 갖춰진 국가는 국민의 소득 수준이 비교적 균일하게 유지되면서 중산층이 탄탄하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분석한 결과 덴마크의 핵심 중산층 비율(중위가구소득 75~125%)은 46.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1개국 중 가장 높았다. 스웨덴은 중산층 비율 46.5%로 뒤를 이었다. 한국은 31.3%로 하위권인 16위에 그쳤다.

이에 따라 우리도 유연한 노동시장을 발판으로 국가와 기업이 손을 잡아 촘촘하게 구축한 재취업 시스템은 적극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경제 위기가 단기간 반복되면서 경기 사이클이 짧아지고 있기 때문에 고용시장의 유연성이 대단히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