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유럽 위기 '리먼 사태급' 증폭…전세계로 번진다"
“지금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금융 안정을 위협하고 있는 재정위기가 유럽연합(EU) 27개국을 거쳐 전 세계로 번질 위험에 처해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은 19일 “유럽중앙은행(ECB)이 유로존 위기의 글로벌 전염 경보를 발령했다”고 보도했다.

ECB는 이날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유로존 재정위기 확산이 글로벌 금융권의 안정을 위협하는 가장 큰 리스크”라며 “시장의 위험성이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경제가 리먼 사태 당시 수준으로 악화될 수 있는 원인으로 ECB는 △재정위기에 처한 나라는 늘고 있지만 금융시장의 각국 정부에 대한 불신은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 △유럽 은행의 자금난 심화 △유럽 경제동력 약화 △세계 경제의 불균형 심화와 급격한 글로벌 경기 둔화 가능성 등을 꼽았다.

빅토르 콘스탄치오 ECB 부총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ECB 본부에서 열린 보고서 발표회에서 “다수의 은행들이 자본확충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며 “시장 변동이 커지면서 미국 은행들과 머니마켓펀드들이 유럽에서 돈을 빼는 것도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다만 유로존 붕괴 가능성에 대해선 “고려해본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도 같은 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의회에 출석해 “대형 은행 중 두 군데 정도가 내년에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할 확률이 2007년 관련 지표가 도입된 이후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고 말해 위기감을 키웠다.

드라기 총재는 디폴트 가능성이 큰 은행을 명시하진 않았지만 “유로존 일부 은행들은 ECB의 자금에 기대야 하는 운명이고 조만간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ECB가 재정위기국 국채 매입을 늘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재확인했다.

ECB의 발표에 대해 독일 주간 슈피겔은 “유럽 재정위기 위험성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커진 것을 ECB가 확인해준 것”이라며 “재정위기가 특정 지역의 문제에서 글로벌 경제 시스템 위기로 확장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FT도 “유럽 정치권이 재정위기 통제에 실패하고 긴축재정을 제대로 집행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글로벌 외환시장에선 ECB의 우려처럼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신흥국 통화가치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주요 투자자들이 신흥국 자산을 팔고 달러나 엔화, 금 같은 안전자산으로 몰리고 있다. 올해 7월 이후 멕시코 페소화는 17%, 브라질 헤알화는 14%, 콜롬비아 페소화는 9% 가치가 하락했다.

세르히오 마르틴 HSBC 애널리스트는 “페소화 등 중남미 통화도 유로화와 같은 패턴을 보이고 있다”며 “남미 역시 속도는 느리지만 유럽처럼 지옥으로 가는 중”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EU 27개국 재무장관들은 이날 화상회의를 갖고 국제통화기금(IMF)에 양자대출 방식으로 최소 1700억유로를 출연키로 했다.

유로존 국가들의 출연분은 1500억유로이며 영국은 일단 IMF 출자에 참여하지 않고 내년에 최종 입장을 결정하기로 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