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 혈세 쓰면서 TV 보고 알았다니…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사실을 북한 방송이 발표할 때까지 파악하지 못했다고 20일 시인했다.

원 원장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국정원이 김 위원장의 사망을 정확하게 안 시점은 북한의 공식 발표 이후”라고 말했다고 권영세 정보위원장과 여야 간사가 전했다.

원 원장은 “중국과 미국, 일본 등도 사전에 몰랐다”고 했지만 “중국은 사전에 알았던 게 아니냐”는 야당 의원들의 추궁에는 답하지 못했다. 그는 또 “북한 내부에서도 김 위원장의 극소수 측근 세력만 알았다고 본다”며 “사망 보도가 나온 뒤 예정됐던 미사일 발사를 취소하고 관련 부대가 복귀하는 일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향후 북한 동향에 대해서는 “김정은 중심의 체제 안정에 역점을 둘 것”이라며 “내부적으로는 전군 비상경계령을 유지하고 주민 통제를 강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북한은 애도 분위기 조성과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 유도에 힘쓸 것이고, 대외적으로는 북·미회담을 연기하면서도 경제적 혜택을 얻기 위한 대미접촉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서는 안전 보장과 경제 지원 확보를 도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장의위원회 서열 1위가 후계자를 의미하고, 북한 방송에서 김정은에 대해 계승자, 영도자 등으로 부르는 것을 감안할 때 김정은 후계 체제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야당은 국정원의 정보 수집 능력 부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최재성 민주통합당 의원은 “한반도가 격랑에 들어가는 순간에도 국정원은 먹통이었다”며 “국정원은 북한의 특별방송 예고 이후 사망보도 개연성에 대해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국정원은 북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예산을 쓰는 게 아니라 정치상황 조사 등 국내 정보 수집에 돈을 쓰고 있다”며 “이렇다 보니 구멍이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내에서는 예산 심사 과정에서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대폭 삭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을 편성하면서 국정원 특수활동비로 4742억원(인건비 포함)을 배정했다. 야권 일각에서는 원 원장 퇴진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도 국정원의 정보 수집 능력을 비판했다. 이두아 의원은 “지난 19일 오전 김 위원장의 사망 여부를 물었을 때 국정원은 아니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국정원의 정보라인이 없다”고 질타했다. 윤상현 의원은 “정부의 대북정보 수집 능력은 인터넷 검색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