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은 체제] '김정일 核노선' 포기안할 듯…일단은 도발보다 대화에 무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한반도 주변국들의 외교적 대응이 본격화되고 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의 후계자인 김정은도 외교적 시험대에 올랐다. 김 위원장 사망 이후 한반도가 동북아 정세의 뇌관으로 떠오름에 따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은 일단 안정적 상황 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각국이 북한에 대해 조의 표시를 했거나 검토 중인 이면에는 이 같은 전략적 포석이 자리한다.

그렇지만 협력의 흐름이 지속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김정은 체제가 어떤 외교적 방향을 잡느냐는 각국의 외교적 이해와 직결된다. 이 때문에 동북아 외교 지형의 새 판 짜기를 둘러싼 남북, 미·일·중·러 간 물밑 외교전은 치열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다.

핵 문제 해결이 1차적인 과제다. 특히 북한을 확실하게 내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중국과 최근 북·미 접촉을 통해 6자회담 재개 협상의 주도권을 잡아왔던 미국이 ‘핵 주도권’을 두고 갈등 구도를 형성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북한과 미국은 이번주 내에 북한에 대한 상당한 식량 지원을 발표하고 북한도 이후 수일 내에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을 잠정 중단(suspend)하겠다는 사실을 공표할 예정이었다. 또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실험 중단, 2009년 추방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북한 재입국 등에도 합의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이 같은 합의는 단기간 내에 실천하기 힘들어졌다. 그렇지만 김 위원장의 장례가 끝난 후 북한의 내부 체제 정비가 어느 정도 이뤄지면 북·미 간 3차 대화가 다시 열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이런 와중에 중국도 리커창 상무부총리가 지난 10월 남북한을 잇달아 방문하는 등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미국과 경쟁을 벌여왔다.

일단 김정은은 김 위원장의 핵 해결 노선을 이어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은 유훈통치에 따라 아버지의 기본 외교 노선을 그대로 따라갈 것”이라며 “내년 1월께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북·미 대화가 다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북한 당국이 애도 기간을 거치고 나면 김 위원장의 유훈을 받들기 위해 북·미 대화와 6자회담을 재개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다고 북·미 대화가 순탄하게 진행되기는 쉽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김 위원장이 그랬듯이 김정은도 핵개발을 체제 유지의 보루로 여기고 미국과의 협상에서 위협과 대화를 반복하는 ‘벼랑 끝 전술’을 이어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북한 매체가 지난 19일 김 위원장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김 위원장이 “그 어떤 원수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전변시키셨다”고 강조한 것에서 북한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핵 문제와 함께 김정은의 최대 당면 과제는 경제 살리기다. 내년 강성대국 원년을 선포한 상황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체제 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

2009년 말 단행된 화폐개혁이 실패로 돌아간 뒤 북한 주민들은 환율 급등과 물가 폭등 등으로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과 장기적 프로젝트로 추진 중인 나선과 황금평 경제무역지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남북한과 러시아를 잇는 가스관 연결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은 단기적으로는 군사적 도발보다는 6자회담 등 대화 재개 쪽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