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비교우위論 안 통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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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정신이 고정관념 깼다
中企정책·사회정책 혼동 안돼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中企정책·사회정책 혼동 안돼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고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을 아는가?” 송병준 산업연구원장이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교수에게 물었다. 로드릭 교수는 정확히 알고있었다. “한국 경제발전사는 정말 흥미롭다. 한국은 외국인들의 말에 개의치 않았다. 세계은행과 서구 경제학자들은 당시 한국의 일관제철소 건설을 정신나간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국 철강산업은 이윤창출에 성공했고, 수출과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글로벌 경제구조 개편에 따른 새로운 산업정책의 모색’이라는 주제의 국제 세미나에서 오간 대화 한 토막이다.
여기서 외국인들의 말이란 전통적 비교우위론을 뜻한다. 리카르도의 비교생산비설, 헥셔-오린의 요소부존이론을 신주단지처럼 여겼다면 한국은 노동집약적 산업이나 했어야 맞지 철강 같은 자본집약적 산업은 엄두도 못 냈을 일이다. 그랬더라면 중국의 부상과 함께 국내 산업들은 벌써 줄초상이 났을 게 뻔하다.
로버트 헌터 웨이드 런던 정경대 교수도 비슷한 회상을 했다. 그는 박성상 전 한국은행 총재의 말을 기억했다. “비교우위론을 믿지 마라. 우리가 무슨 일을 벌일 때마다 비교우위론 옹호론자들의 결론은 늘 한국은 비교우위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하고 싶은 걸 했고,다 잘해냈다.” 산업연구원 원장까지 지낸 박성상 씨는 비교우위론 대신 ‘견인차 이론(locomotive theory)’을 주창했다.
철강만 그런 게 아니었다. 1983년 삼성이 반도체 진출을 선언했을 때 밖에서는 온통 비웃음이었다. 1972년 현대가 울산에 조선소를 짓겠다고 했을 때도, 1974년 독자적으로 국산 자동차를 생산하겠다고 했을 때도 밖에서 들려오는 건 역시 비아냥뿐이었다. 안에서도 동조 세력이 있었다. 관료도 예외가 아니었다. 철강부터 그랬다. 심지어 조선산업의 경우 “현대가 성공하면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는 고위 관료도 있었다. 반도체 산업도 당시 거시경제 담당 부처는 국제경쟁력이 없다고 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통적 비교우위론을 깨뜨린건 바로 기업가들이었다. 국내에 있지도 않은 조선소에서, 살 사람도 없는 배를 팔겠다며 고 정주영 회장이 A&P 애플도어 롱바톰 회장을 찾아가 자금지원을 요청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이런 기업가정신이 한 국가의 요소부존도라는 제약조건을 무력화시켜버렸다. 선진국이 기술보호주의로 나오면 연구·개발 투자로 맞대응했다.
지금의 노동, 자본 등 생산요소의 모빌리티는 그때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다. 기술과 지식의 모빌리티도 높아졌다. 그러나 성공한 기업가들은 달라진 환경만큼 쏟아지지 않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로드릭 교수는 이 점을 정확히 잡아냈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은 10~20년 전에는 그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던 기업들이다. 한국은 삼성 LG 등 오래된 기업들이 여전히 산업을 주도한다. 한국의 핵심과제는 기업가정신이 투철한 새로운 기업들을 창출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기업가정신부터 되살리라는 얘기다. 로드릭 교수는 정부가 민간에 귀를 더 기울여야 한다며 잘못된 정책,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런 그에게 한국의 대기업-중소기업 동반성장 정책을 물었다. “정부가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하나 있다. 중소기업정책과 사회보장정책을 곧잘 혼동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비싼 세미나를 열어놓고 정부가 이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을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여기서 외국인들의 말이란 전통적 비교우위론을 뜻한다. 리카르도의 비교생산비설, 헥셔-오린의 요소부존이론을 신주단지처럼 여겼다면 한국은 노동집약적 산업이나 했어야 맞지 철강 같은 자본집약적 산업은 엄두도 못 냈을 일이다. 그랬더라면 중국의 부상과 함께 국내 산업들은 벌써 줄초상이 났을 게 뻔하다.
로버트 헌터 웨이드 런던 정경대 교수도 비슷한 회상을 했다. 그는 박성상 전 한국은행 총재의 말을 기억했다. “비교우위론을 믿지 마라. 우리가 무슨 일을 벌일 때마다 비교우위론 옹호론자들의 결론은 늘 한국은 비교우위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하고 싶은 걸 했고,다 잘해냈다.” 산업연구원 원장까지 지낸 박성상 씨는 비교우위론 대신 ‘견인차 이론(locomotive theory)’을 주창했다.
철강만 그런 게 아니었다. 1983년 삼성이 반도체 진출을 선언했을 때 밖에서는 온통 비웃음이었다. 1972년 현대가 울산에 조선소를 짓겠다고 했을 때도, 1974년 독자적으로 국산 자동차를 생산하겠다고 했을 때도 밖에서 들려오는 건 역시 비아냥뿐이었다. 안에서도 동조 세력이 있었다. 관료도 예외가 아니었다. 철강부터 그랬다. 심지어 조선산업의 경우 “현대가 성공하면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는 고위 관료도 있었다. 반도체 산업도 당시 거시경제 담당 부처는 국제경쟁력이 없다고 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통적 비교우위론을 깨뜨린건 바로 기업가들이었다. 국내에 있지도 않은 조선소에서, 살 사람도 없는 배를 팔겠다며 고 정주영 회장이 A&P 애플도어 롱바톰 회장을 찾아가 자금지원을 요청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이런 기업가정신이 한 국가의 요소부존도라는 제약조건을 무력화시켜버렸다. 선진국이 기술보호주의로 나오면 연구·개발 투자로 맞대응했다.
지금의 노동, 자본 등 생산요소의 모빌리티는 그때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다. 기술과 지식의 모빌리티도 높아졌다. 그러나 성공한 기업가들은 달라진 환경만큼 쏟아지지 않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로드릭 교수는 이 점을 정확히 잡아냈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은 10~20년 전에는 그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던 기업들이다. 한국은 삼성 LG 등 오래된 기업들이 여전히 산업을 주도한다. 한국의 핵심과제는 기업가정신이 투철한 새로운 기업들을 창출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기업가정신부터 되살리라는 얘기다. 로드릭 교수는 정부가 민간에 귀를 더 기울여야 한다며 잘못된 정책,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런 그에게 한국의 대기업-중소기업 동반성장 정책을 물었다. “정부가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하나 있다. 중소기업정책과 사회보장정책을 곧잘 혼동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비싼 세미나를 열어놓고 정부가 이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을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