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청렴성은 검찰의 마지막 보루다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되돌아보면 안타까운 일들이 많지만, 올해엔 유독 검찰의 끝도 모를 추락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주변으로부터 줄곧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더니 이제 청렴성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리는 위기에 처했다.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의 수렁에서 겨우 벗어나자마자 ‘벤츠 검사 스캔들’로 이어지고 있다. 벤츠 승용차를 빌려 탔다는 여검사를 둘러싼 변호사와 또 다른 여인 간에 벌어진 추문은 실로 막장 드라마 수준이라고 할 만큼 충격적이다.

검찰의 존립기반을 흔들어 놓는 것은 부패 스캔들만이 아니다. 수사개시권을 갖되 경찰 수사는 모두 검사의 지휘를 받도록 법에 명문화한 뒤에도, 경찰은 공공연히 내사라는 영역에선 지휘를 받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경찰수사에 대한 사법적 통제는 검찰제도의 본질이고, 내사가 수사의 실질을 가진다면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당연한 지적도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기관 간의 밥그릇 싸움으로 단정하며 권한을 많이 가진 검찰 측이 양보하라는 여론이 우세한 것 같다.

아무래도 검찰이 권한을 많이 쥐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검찰제도 창설 이후 수십년 동안의 족적을 보면 그 연유를 알 수 있다. 검찰제도를 도입할 때만 해도 검사의 고유 임무는, 경찰수사의 결과물을 법적 잣대로 걸러 기소한 다음 재판에서 한쪽 당사자가 되어 유죄판결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임무 수행에 필요한 예외적인 수단으로 허용된 직접수사활동이 이런저런 계기가 있을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수사지휘의 본령에서 벗어나 경찰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광범위한 분야에서 직접수사에 나서게 된 것이다. 우리 검찰제도의 모델인 프랑스나 독일보다 많은 권한을 가진 것으로 비쳐지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직접수사활동 때문이다.

물론 그와 같은 영역 확장이 검찰의 영향력 확대욕구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국민이 용인해 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고, 그와 같이 용인해 준 것은 뭐니뭐니해도 검사 개개인의 청렴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청렴성이 흔들려서는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도 온전히 행사할 수 없다. 심지어 조직폭력이나 마약범죄와 같은 경찰 고유영역에서 경찰들과 경쟁하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법적 통제라는 명분으로 수사지휘를 하도록 허용해 준 것도, 검사 개개인의 청렴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검사의 청렴성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엄선된 소수 정예인력을 도제식으로 훈련하던 시절에도 일탈이 간혹 있었지만, 이제 몇몇 사람을 솎아내고 끝내는 단계를 넘어선 것 같다. 근래 들어 임관하는 숫자가 늘어나면서 시스템적으로 느슨해진 것은 아닌지, 여기저기 직접수사에 나서며 영향력 확대에 치중하는 검찰운영 때문에 청렴성을 따지는 분위기가 뒷전으로 밀려난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청렴성을 잃은 검사는 이미 검사가 아니다. 청렴성이 흔들려서는 검찰의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이제 검찰은 청렴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할 방안을 한시바삐 찾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기본에 충실한 체제로 몸집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직접수사 영역을 대폭 줄여 1차적인 수사는 가급적 경찰에 맡기고, 경찰이 처리해 낼 수 없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나서야 한다. 수사권 발동을 자제하다가 국민들의 거센 요구 때문에 도저히 나서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될 때만 나서야 한다. 물론 그런 경우 어떤 일이 있어도 무죄를 받아서는 안된다.

겨울산에 올라 나무들을 보라. 혹독한 추위와 세찬 바람을 이겨내기 위해 몸집을 다 털어내지 않는가. 어려울 때 기본에 충실하며 봄을 기다리는 겨울나무들의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문영호 <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ㆍ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