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찾아 훨훨 날던 두마리의 나비, 3.8㎝ 다이얼에 내려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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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Practice] 시계 명가 '반클리프 아펠'
애절한 사랑·상상속 고래 등 컨셉트 정하면 정밀하게 계산
에나멜링 기법으로 색칠한 후 800도 오븐서 수십번 구워
애절한 사랑·상상속 고래 등 컨셉트 정하면 정밀하게 계산
에나멜링 기법으로 색칠한 후 800도 오븐서 수십번 구워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를 4 크기의 다이얼(시계판)에 담을 수 있을까.’
감성적인 스토리를 입힌 시계로 유명한 명품 시계·보석 메이커 반클리프 아펠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됐다. 두 보석 가문의 자제였던 알프레드 반클리프와 에스텔 아펠이 그들의 러브스토리를 기반으로 1906년에 만든 이 회사는 소설과 동화 속에 등장할 만큼 아름다운 이야기를 직경 4도 안 되는 작은 다이얼 안에 정교하게 표현해내 ‘시계를 예술의 경지에 올려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랑하는 연인이 12시간에 한번 퐁네프다리 위에서 만나 애틋한 키스를 나누는 이야기, 지구 밖 우주여행을 하고픈 동심, 소설가 쥘 베른의 작품 속 세계를 바탕으로 상상한 북극의 고래 등을 한편의 시를 읊듯 동그란 다이얼 안에서 읽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오묘한 에나멜링 기법으로 조심스레 붓으로 색칠한 뒤 800도 오븐에서 구워내는 과정을 수십 차례 반복하고, 어렵게 수집한 마더오브펄(모패·조개 껍데기)의 조각을 세공하는 등 반클리프 아펠은 시간과의 싸움을 이겨냈다. ‘세계 최고의 아트 워치 메이커’라는 자부심 때문이다. 지금도 ‘황금손’(맹도르·Mains d’Or)으로 불리는 반클리프 아펠의 숙련된 장인들은 50년이 넘는 경험을 바탕으로 10대 후계자들에게 예술적 가치가 담긴 기술과 자부심을 전승해주고 있다.
○예술로 승화시킨 시계 기술의 명가
100년이 넘는 반클리프 아펠의 역사와 전통은 ‘시간의 서사시(The Poetry of Time)’라는 컨셉트로 요약된다. 시간을 차갑게 흘러가는 물리적 의미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인간의 사랑과 꿈을 담은 추억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를 기술적으로 풀어낸 것이 2006년 처음 내놓은 ‘포에틱 컴플리케이션’ 제품이다.
포에틱 컴플리케이션은 크게 네 가지 무브먼트(동력장치) 기술로 나뉜다. 구체적으로는 △24시간을 주기로 움직이는 무브먼트 제품(윈 주르네 아 파리, 레이디 아펠 데이 앤드 나이트) △시간과 분을 표시하는 2개의 시계바늘이 360도 회전하지 않고 120도 각도 안에서 움직이게 하는 레트로그레이드 무브먼트 제품(퐁 데 자모르, 버터플라이 심포니, 레이디 아펠 페어리) △4계절을 주기로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표현해내는 ‘콴티엠므 드 세종’ 무브먼트 제품(미드나잇 인 파리, 레이디 아펠 아틀란타이드) △중력의 오차를 줄여 정확한 시간을 표시하게 만드는 투르비옹 무브먼트 제품(미드나잇 투르비옹 어벤추린, 투르비옹 나크르) 등이다. 이 중 버터플라이 심포니는 지난달 열린 ‘2011 시계의 날(The Watches Days 2011)’ 전시회에서 ‘그랑프리 드 퍼블릭’ 상을 받았다. 매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이 전시회는 40여개 시계 명가의 제품을 둘러본 관람객들이 투표로 뽑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다.
레트로그레이드 무브먼트로 만든 퐁 데 자모르도 지난해 11월 ‘올해의 시계상-프레스티지 여성 워치 부문’을 수상한 작품이다. 사랑하는 연인이 12시간마다 한번씩, 하루에 두 번 만나 1분간 키스를 나누는 장면을 다이얼 안에 정교하게 표현해냈다. 이를 위해 세계적인 에나멜 아티스트 도미니크 바론 워크숍의 ‘콩트 주와 에나멜’ 기법을 적용했다.
콩트 주와 에나멜은 어떤 에나멜보다 더 미세하고 곱게 갈린 파우더를 특수한 액상에 혼합한 뒤 바르는 기술이다. 메탈 소재의 다이얼 부품 위에 블랙 에나멜을 겹겹이 바른 뒤 화이트 에나멜을 부드러운 그라데이션 효과를 내며 발라준 뒤 800도의 특수 오븐에서 또다시 수십번을 반복해서 구워내야 한다. 에나멜의 층, 굽는 시간과 온도 등에 따라 성패가 갈리기 때문에 도미니크 바론의 에나멜링은 ‘불의 예술’ 또는 ‘시간의 빛’이라 불린다.
○이어지는 러브스토리, 작품으로 탄생
퐁 데 자모르에 담긴 스토리는 내년 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국제 고급시계 박람회’(SIHH)에서 선보일 신제품에 후속편처럼 이어질 예정이다. 애틋한 키스를 나누며 사랑을 확인한 연인의 다음 이야기를 담은 것.
여자는 남자를 그리워하며 연을 날리고(레이디 아펠 포에틱 위시), 남자는 에펠탑 밑에서 꽃을 들고 여자를 기다리는 장면(미드나잇 포에틱 위시)으로 각각 두 개의 다이얼에 표현해냈다. 처음으로 미닛 리피터(시각을 소리로 알려주는 장치)를 달아 5분에 한 번씩, 한 시간에 한 번씩 여자가 다리 위를 걸으면서 하늘에 날려버린 연을 붙잡는 장면을 볼 수 있게 했다.
이 부품을 만들기 위해 제네바의 장 마르크 비더레흐트 워크숍(공방)에선 수천번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미닛 리피터를 개발한 장인(익명 요구)은 “컨셉트를 정하면 이를 수학적으로 계산해낸 뒤 일일이 손으로 부품을 만드는 데만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내놓을 시계 속 캐릭터는 2007년 레이디 아펠 페어리, 2009년 윈 주드르네 아 파리, 2010년 퐁 데 자모르에서 이어져온 스토리를 완성하는 의미가 있다. 푸른 밤하늘에서 요술봉을 들고 있던 요정(레이디 아펠 페어리)은 방돔광장 에펠탑 등 파리를 거니는 소녀(윈 주르네 아 파리)가 된 뒤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는 어엿한 숙녀(퐁 데 자모르)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다.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예술적 가치
반클리프 아펠의 또 다른 강점은 고객들이 주얼리와 워치에서 동일한 스토리와 캐릭터를 느낄 수 있다는 데 있다. 예컨대 레이디 아펠 페어리 캐릭터는 각종 다이아몬드로 만든 주얼리와 함께 시계로도 제작됐다. 반클리프 아펠은 이런 독창적인 기술력과 예술적 가치를 고수하는 것은 물론, 다음 세대로 전승하는 일에도 주력하고 있다. 내년 2월 파리 방돔광장에 처음 문을 여는 주얼리 스쿨 ‘에콜 반클리프 아펠’은 원하는 사람들에게 자사의 원석을 만져보고 장인들의 기술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이 학교는 3단계의 강의를 위한‘체험 살롱’, ‘트레이닝 살롱’, ‘라이브러리 공간’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제네바=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감성적인 스토리를 입힌 시계로 유명한 명품 시계·보석 메이커 반클리프 아펠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됐다. 두 보석 가문의 자제였던 알프레드 반클리프와 에스텔 아펠이 그들의 러브스토리를 기반으로 1906년에 만든 이 회사는 소설과 동화 속에 등장할 만큼 아름다운 이야기를 직경 4도 안 되는 작은 다이얼 안에 정교하게 표현해내 ‘시계를 예술의 경지에 올려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랑하는 연인이 12시간에 한번 퐁네프다리 위에서 만나 애틋한 키스를 나누는 이야기, 지구 밖 우주여행을 하고픈 동심, 소설가 쥘 베른의 작품 속 세계를 바탕으로 상상한 북극의 고래 등을 한편의 시를 읊듯 동그란 다이얼 안에서 읽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오묘한 에나멜링 기법으로 조심스레 붓으로 색칠한 뒤 800도 오븐에서 구워내는 과정을 수십 차례 반복하고, 어렵게 수집한 마더오브펄(모패·조개 껍데기)의 조각을 세공하는 등 반클리프 아펠은 시간과의 싸움을 이겨냈다. ‘세계 최고의 아트 워치 메이커’라는 자부심 때문이다. 지금도 ‘황금손’(맹도르·Mains d’Or)으로 불리는 반클리프 아펠의 숙련된 장인들은 50년이 넘는 경험을 바탕으로 10대 후계자들에게 예술적 가치가 담긴 기술과 자부심을 전승해주고 있다.
○예술로 승화시킨 시계 기술의 명가
100년이 넘는 반클리프 아펠의 역사와 전통은 ‘시간의 서사시(The Poetry of Time)’라는 컨셉트로 요약된다. 시간을 차갑게 흘러가는 물리적 의미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인간의 사랑과 꿈을 담은 추억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를 기술적으로 풀어낸 것이 2006년 처음 내놓은 ‘포에틱 컴플리케이션’ 제품이다.
포에틱 컴플리케이션은 크게 네 가지 무브먼트(동력장치) 기술로 나뉜다. 구체적으로는 △24시간을 주기로 움직이는 무브먼트 제품(윈 주르네 아 파리, 레이디 아펠 데이 앤드 나이트) △시간과 분을 표시하는 2개의 시계바늘이 360도 회전하지 않고 120도 각도 안에서 움직이게 하는 레트로그레이드 무브먼트 제품(퐁 데 자모르, 버터플라이 심포니, 레이디 아펠 페어리) △4계절을 주기로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표현해내는 ‘콴티엠므 드 세종’ 무브먼트 제품(미드나잇 인 파리, 레이디 아펠 아틀란타이드) △중력의 오차를 줄여 정확한 시간을 표시하게 만드는 투르비옹 무브먼트 제품(미드나잇 투르비옹 어벤추린, 투르비옹 나크르) 등이다. 이 중 버터플라이 심포니는 지난달 열린 ‘2011 시계의 날(The Watches Days 2011)’ 전시회에서 ‘그랑프리 드 퍼블릭’ 상을 받았다. 매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이 전시회는 40여개 시계 명가의 제품을 둘러본 관람객들이 투표로 뽑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다.
레트로그레이드 무브먼트로 만든 퐁 데 자모르도 지난해 11월 ‘올해의 시계상-프레스티지 여성 워치 부문’을 수상한 작품이다. 사랑하는 연인이 12시간마다 한번씩, 하루에 두 번 만나 1분간 키스를 나누는 장면을 다이얼 안에 정교하게 표현해냈다. 이를 위해 세계적인 에나멜 아티스트 도미니크 바론 워크숍의 ‘콩트 주와 에나멜’ 기법을 적용했다.
콩트 주와 에나멜은 어떤 에나멜보다 더 미세하고 곱게 갈린 파우더를 특수한 액상에 혼합한 뒤 바르는 기술이다. 메탈 소재의 다이얼 부품 위에 블랙 에나멜을 겹겹이 바른 뒤 화이트 에나멜을 부드러운 그라데이션 효과를 내며 발라준 뒤 800도의 특수 오븐에서 또다시 수십번을 반복해서 구워내야 한다. 에나멜의 층, 굽는 시간과 온도 등에 따라 성패가 갈리기 때문에 도미니크 바론의 에나멜링은 ‘불의 예술’ 또는 ‘시간의 빛’이라 불린다.
○이어지는 러브스토리, 작품으로 탄생
퐁 데 자모르에 담긴 스토리는 내년 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국제 고급시계 박람회’(SIHH)에서 선보일 신제품에 후속편처럼 이어질 예정이다. 애틋한 키스를 나누며 사랑을 확인한 연인의 다음 이야기를 담은 것.
여자는 남자를 그리워하며 연을 날리고(레이디 아펠 포에틱 위시), 남자는 에펠탑 밑에서 꽃을 들고 여자를 기다리는 장면(미드나잇 포에틱 위시)으로 각각 두 개의 다이얼에 표현해냈다. 처음으로 미닛 리피터(시각을 소리로 알려주는 장치)를 달아 5분에 한 번씩, 한 시간에 한 번씩 여자가 다리 위를 걸으면서 하늘에 날려버린 연을 붙잡는 장면을 볼 수 있게 했다.
이 부품을 만들기 위해 제네바의 장 마르크 비더레흐트 워크숍(공방)에선 수천번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미닛 리피터를 개발한 장인(익명 요구)은 “컨셉트를 정하면 이를 수학적으로 계산해낸 뒤 일일이 손으로 부품을 만드는 데만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내놓을 시계 속 캐릭터는 2007년 레이디 아펠 페어리, 2009년 윈 주드르네 아 파리, 2010년 퐁 데 자모르에서 이어져온 스토리를 완성하는 의미가 있다. 푸른 밤하늘에서 요술봉을 들고 있던 요정(레이디 아펠 페어리)은 방돔광장 에펠탑 등 파리를 거니는 소녀(윈 주르네 아 파리)가 된 뒤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는 어엿한 숙녀(퐁 데 자모르)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다.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예술적 가치
반클리프 아펠의 또 다른 강점은 고객들이 주얼리와 워치에서 동일한 스토리와 캐릭터를 느낄 수 있다는 데 있다. 예컨대 레이디 아펠 페어리 캐릭터는 각종 다이아몬드로 만든 주얼리와 함께 시계로도 제작됐다. 반클리프 아펠은 이런 독창적인 기술력과 예술적 가치를 고수하는 것은 물론, 다음 세대로 전승하는 일에도 주력하고 있다. 내년 2월 파리 방돔광장에 처음 문을 여는 주얼리 스쿨 ‘에콜 반클리프 아펠’은 원하는 사람들에게 자사의 원석을 만져보고 장인들의 기술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이 학교는 3단계의 강의를 위한‘체험 살롱’, ‘트레이닝 살롱’, ‘라이브러리 공간’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제네바=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