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들인 돈이 얼만데…" 매몰비용의 함정을 피하라
연말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한 해 동안의 사업 진행 경과를 정리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예정대로 진행된 프로젝트들이 있는가 하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내년을 기약해야 하는 프로젝트들도 있다. 그런데 아직 종료되지 않은 프로젝트를 지속할 것인지, 종료할 것인지의 결정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경우 이왕 진행되던 프로젝트이니 끝을 보자는 생각으로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여러분의 회사가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매몰비용의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매몰비용의 함정이란 미래에 이익보다는 손해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들인 비용과 노력, 시간 등이 아까워서 사업을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매몰비용의 함정에 빠져 불합리한 선택을 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콩코드 여객기다. 이 여객기는 미국과 옛 소련이 우주기술을 주도하던 시절, 영국과 프랑스가 자존심을 걸고 개발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여객기다. 1962년 개발에 착수해 1969년 시험비행에서 마하2(시속 2450㎞)를 돌파, 여객기로서는 최고의 기술을 보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개발 초기부터 수익성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너무 비싼 연료, 부족한 좌석, 비싼 항공요금 등이 이유였다. 더구나 1970년대에 세계 경제를 뒤흔든 석유파동은 콩코드의 경제성에 치명상을 입혔다. 이런 상황인데도 영국과 프랑스는 콩코드 여객기를 개발하기 위해 들인 돈이 아까웠고, 자존심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 무리하게 운항을 시도했다. 1976년부터 27년간 유럽과 미국을 잇는 가장 빠른 비행기라는 명성은 지켰지만, 만성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2003년 운항을 중지했다.

미국 최고의 통신장비기업인 모토로라도 매몰비용의 함정을 피하지 못했다. 1985년 모토로라는 야심찬 이리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위성 휴대폰으로 전 세계를 하나로 묶는 서비스를 개발하자는 의도였다. 10년간 13억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서 보니 이 사업의 성공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개인 휴대 통신에서 글로벌 로밍이 가능해지면서 값비싼 위성 휴대폰을 사용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사업을 책임지고 있던 임원은 “13억달러나 투자한 프로젝트를 이제 와서 포기할 수 없다”며 실패 가능성을 무시한 채 계속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결국 1998년 이리듐 사업을 시작했지만 출시 다음해에 20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기록했다. 이 실패로 인해 모토로라는 회생이 어려울 정도의 타격을 입었다.

이준구 서울대 교수는 그의 저서 《36.5℃ 인간의 경제학》에서 우리 정부도 매몰비용 함정에 빠진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1991년 첫 삽을 뜬 새만금 간척사업의 지속적 추진 여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을 때의 일이다. 환경단체들은 간척사업이 경제성도 없을 뿐 아니라 환경 파괴까지 우려된다는 이유로 사업 중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 대법원은 사업 지속을 요구하는 측의 “1조원 이상의 비용이 투입된 국가적 사업을 이제 와서 포기하는 것은 낭비”라는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매몰비용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의사결정을 할 때 이미 사용한 비용에 대해서는 깨끗이 잊어야 한다. 사업을 결정할 때 중요한 것은 미래의 예상이익이다. 충분한 이익이 예상된다면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고,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포기하는 것이 마땅하다. 지금까지 들인 비용은 잊고, 지금 그 사업을 처음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사업의 수익성을 판단해야 한다.

연말에 지난 사업을 평가하고 새로운 사업을 계획할 때 다시 한번 검토해 보자. 지금까지 진행된 사업에 대해 ‘지금까지 들인 돈이 얼만데…’ ‘조금만 더 들이면 되는데…’라는 이유로 사업을 다음 해로 연장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매몰비용의 함정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길 바란다.

이계평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