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세계 미술계는 경제 한파의 영향을 온몸으로 체감했지만 미술애호가들의 예술에 대한 열기만큼은 여느 때 못지않게 뜨거웠다.

올 한 해는 유난히 옛 거장들의 전시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밀라노의 궁정화가’전이었다. 모나리자를 ‘모셔’오지는 못했지만 ‘암굴의 성모’ 등 르네상스 천재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 지금까지 많은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마티스-피카소전’(파리 그랑팔레) ‘미켈란젤로-천재의 드로잉전’(비엔나 알베르티나 미술관) ‘모던 예술의 창시자, 마네전’(파리 오르세 미술관) 플랑드르의 매너리즘 화가 ‘얀 호사르트전’(런던 내셔널 갤러리) ‘르네상스 초상화전’(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도 주목을 끌었다.

현대미술 전시로는 세계 3대 비엔날레 중 하나인 베니스 비엔날레를 빼놓을 수 없다. ‘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을 주제로 한 올해 전시는 국가관의 경쟁 과열 등 본래의 순수성이 오염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몬드리안과 데스틸전’(파리 퐁피두센터), 빌럼 드 쿠닝의 회고전(뉴욕 근대미술관), 요절한 낙서화가 ‘바스키아전’(파리근대미술관)도 눈길을 끌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긴축정책을 펼침에 따라 문화예술 예산을 줄여 예정된 전시의 상당수가 취소된 것은 안타깝다. 영국의 경우 공공박물관 지원 예산이 15%나 삭감돼 대규모 특별전 대신 자체 소장품전으로 활로를 모색했다. 덕분에 수장고에서 잠자던 옛 거장들의 작품이 대거 햇빛을 봤는데 포드 매독스 브라운전(맨체스터 미술관), 앳킨슨 그림쇼전(런던 길드홀) 등이 대표적이다.

경기를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는 아트 페어는 전반적으로 선전한 모습이다. 대부분의 아트페어에 예년보다 많은 내방객이 몰렸다. 프리즈 아트페어(런던)는 6만5000명 이상이 다녀갔고, 아모리쇼(뉴욕)도 6만명 이상의 입장객을 기록했다. 경기가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애호가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올 아트페어의 두드러진 경향은 비디오 예술이 퇴조를 보이고 다양한 재질의 공예적 설치작업과 조각이 부각되는 가운데 대부분 예술의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하기보다 개별 작가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데 치중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고가의 스타작가 작품보다는 유망한 신인의 중저가 작품으로 애호가의 지갑을 열게 하려는 태도가 두드러졌다.

아모리쇼, 프리즈 아트페어나 피악(FIAC·파리)처럼 메인 행사와 더불어 마이너 아트페어를 함께 열거나 영화, 음악 등 다양한 부대행사를 접목해 종합적인 예술제를 지향하기도 했다.

아트 마켓에서 주목할만한 현상은 중국 시장의 약진이다. 지난 5월 말 홍콩아트페어에 바젤아트페어와 맞먹는 6만3500여명이 다녀간 것은 그 같은 분위기를 확인시킨 것이었다.

올해 유명을 달리한 작가도 많았다. 그림과 낙서, 드로잉을 장난스럽게 결합한 그림으로 유명한 미국 작가 사이 트웜블리, 폴란드 출신의 개념미술가인 로만 오팔카, 누드초상 작가 루치안 프로이트, 인도의 피카소로 불리는 마크불 피다 후사인 등이 세상을 떠났다.

유럽과 일본 무대에서 활동하는 이우환이 백남준에 이어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회고전의 영예를 안은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