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日 '특허 삼국지'…정부가 앞장서 '지식재산 무기고' 관리
구한말(舊韓末) 제국주의 시대에는 중국, 일본, 러시아가 총칼을 무기로 한반도를 에워쌌다. 약 100년이 지난 지금은 러시아가 미국으로 대체되고 총칼이 특허로, 영토 점령이 아닌 경제 지배로 바뀌었을 뿐 한반도를 둘러싼 총성 없는 특허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기업들이 국가를 대신해 대리전을 할 뿐이다. 특허전쟁 준비 상황을 한번쯤 점검할 필요가 있다.

미국
#특허정책, 기업인에게 길을 묻다

1980년대 미국은 엄청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에 시달렸다. 산업경쟁력이 밑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일본과 독일에 내줘야 할 형편이었다. 이때 미국 경쟁력의 잠재력을 특허에서 찾은 휴렛팩커드의 존 영 사장 등 산업계 대표들이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에게 건의, 제안한 것이 특허 중시 정책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평등 및 공정경쟁이 최고의 미덕이었다. 공정거래 정책에 밀려 경원시되던 특허를 경쟁력의 원천으로 재평가하면서 정부의 정책과 제도를 수정했다.

연방정부나 주정부가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해 특허 발명이 창출될 경우 그 소유권을 자금 제공자인 정부가 아닌 대학 등 실제의 발명자에게 귀속시키도록 했고, 특허를 둘러싼 분쟁에 대해 좀 더 전문적이고 신속하게 판결함으로써 특허권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연방순회재판소를 설치하는 등 특허를 중시하는 정책과 제도를 마련했다.

#미국은 왜 특허에 집착하는가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기회의 땅 미국은 세계의 인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다. 해외 인재들이 쏟아내는 두뇌창작물은 고스란히 미국의 특허자산으로 남게 됐다. 여기에 미국인들이 창출한 특허까지 더해져 거대한 특허자산을 구축했다. 미국은 경쟁 패러다임이 유형자산에서 무형자산으로 이동하면서 특허를 무기로 경쟁력을 회복하자는 특허 중시 정책을 채택, 국제 경제전쟁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확신했다. 제조 분야에서는 미국이 경쟁력을 상실했지만 제품에 내재되는 특허 및 그 외부로 표현되는 디자인 및 지식재산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덕분이었다.

미국은 자신이 최고의 경쟁력을 갖는 특허 및 지식재산을 범세계적인 무기로 만들어 세계 경제를 지배하기 위해 개발도상국들의 반대에도 WTO 트립스(Trips)를 창설하고 세계특허법(PLT) 제정을 주도해 가고 있다. 더 나아가 특허에 관한 세계 공통의 회계언어를 구축하려고 국제회계기준(IFRS)을 관철시켰다.

美·中·日 '특허 삼국지'…정부가 앞장서 '지식재산 무기고' 관리
#세계 특허의 절반 이상을 차지

미국은 세계 최고의 특허강국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세계 1위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가 발표한 2010년 PCT국제출원 건수를 보면 미국이 확고부동한 1위를 차지했고, 전년(2009년) 대비 56.2% 증가한 중국이 4위를 기록했다. 미국 IFI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미국 특허등록 건수는 21만9614건(의장 제외)으로 전체의 50.3%를 차지했고 뒤이어 일본이 21.3%로 2위에 올랐다. 한국은 삼성전자, LG전자, 하이닉스반도체, LG디스플레이 등의 선전에 힘입어 5.4%로 3위에 랭크됐다.

#기업 특허담당 부사장 특허청장 발탁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9년 8월 미국 IBM에서 특허상표 포트폴리오 총괄 및 지식재산 정책을 담당하던 데이비드 카포스 부사장을 미국 상무성 지식재산담당 차관 겸 미국특허청(USPTO) 장관으로 임명했다. 상원 본회의에서도 미국이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 즉 출원심사 적체와 재정 악화 타개, 특허심사의 질 확보, 특허법 개정 등 산재한 문제를 해결할 책임감과 리더십 등을 겸비한 사람으로 카포스 부사장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일본
#잃어버린10년 벗어날 비장의 무기

일본은 소위 ‘잃어버린 10년’의 끝 무렵인 2000년을 전후해 일본의 산업경쟁력에 대한 통렬한 자성과 비판이 내부적으로 일어났다. 미국이 1980년대의 막대한 무역·재정적자를 극복하고 1990년대 들어 서서히 경쟁력을 회복하고 다시금 세계 경제의 리더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데는 특허 중시 전략이 주효했다. 일본도 이 점에 착안, 세계 최고의 제조기술을 기반으로 특허 및 기술 등의 지식재산 전략으로 국가를 다시 부흥시킬 수 있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당시 총리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지식재산입국 전략’을 선포하고 정부정책의 핵심 근간으로 삼았다.

#총리가 본부장 맡아 진두지휘

일본의 지식재산입국 전략은 한마디로 특허 등 지식재산의 창출과 권리 확보, 사업화를 통해 일본 경제의 국제경쟁력을 회복해 세계 경제대국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전체 국가조직 및 공공단체, 대학, 민간 기업 등이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케 하고 그 실천에 필요한 인재 육성, 제도 및 법률 정비 등의 인프라를 구축해 국가 발전의 기틀로 삼자는 것이다. 총리가 본부장을 맡고 관련 장관들이 위원이 돼 합의체로 운영된다.사무국 주도로 매년 지식재산계획을 발표하고 실천 여부를 점검, 미해결 과제는 이듬해 계획에 반영시켜 실행하고 있다. 고이즈미 정권이 끝나고 정권이 민주당으로 이양되면서 대부분의 정부정책이 없어지거나 수정됐지만 지식재산입국 전략은 그대로 승계됐다.

#해외로 공격목표를 확대하는 일본

국제표준특허전략 확대, 일본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할 특허 제도 신설, 동남아 국가에 대한 특허 인프라 구축 확대 등 최근 일본 특허전략의 국제화가 점점 늘고 있다. 동시에 일본 기업들도 국제 특허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원자력 발전 사고로 공급체인의 리스크 관리 필요성이 증대하고 엔고(高) 현상 등으로 일본 기업의 해외 진출이 급증하면서 일본 특허전략의 국제화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위한 현지 특허망 구축은 물론 특허기술의 안전한 이전 및 사업화를 위한 현지 특허관련 정보조사 및 보급, 특허 종합컨설팅 제공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허전략을 일본 기업들의 해외 진출 방패 및 무기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美·中·日 '특허 삼국지'…정부가 앞장서 '지식재산 무기고' 관리
중국

#특허 인해전술로 ‘세계 특허5강’에 합류

중국의 특허 출원은 가히 폭발적이다. 2004년 기준으로 이공계대학의 석·박사 재학생 숫자만도 40만명이 넘는다. 해외 유학생 출신 과학기술연구자까지 합하면 엄청난 숫자가 될 것이다. 이들이 발명품을 쏟아내고 있다. WIPO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PCT국제특허출원 기업 랭킹에서 중국의 중흥통신(ZTE)이 세계 2위, 화웨이기술유한공사가 세계 4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한국 등과 함께 세계 특허 5강에 속해 있다.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부상할 것이다. 그래서 중국이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연구소’ ‘세계의 특허경연장’으로 변모할 것이라고 예견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분위기와 연구·개발 과학자의 인해전술로 세계 특허를 싹쓸이하는 날이라도 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특허는 국제적으로 공인되는 무기이기 때문에 비난할 수 없다. 기술인해전술의 중국이 두려운 이유다.

#2020년까지 국가 지식재산전략 발표

중국은 특허, 상표, 저작권 등 지식재산의 불법적인 모방 및 침해로 악명이 높다. 이로 인해 미국, 일본 등 피해 국가로부터 많은 항의와 수모에 가까운 조사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은 수출을 위해, 또 자국의 미비한 지식재산제도 및 정책, 낮은 수준의 인식 때문에 참아왔다. 그러나 경쟁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지식재산의 잠재적 무기(이공계 과학기술자 수)를 엄청나게 소유하고 있음을 무기로 지식재산 국제경제전쟁에 정면 승부하기로 작심했다.

이것이 2008년 6월 발표한 ‘국가 지식재산권전략 강요’ 에 담겨 있다. 2020년까지 중국 지식재산의 창출, 활용, 보호 및 관리 능력을 고도의 국제적 수준을 갖춘 지식재산 국가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천명했다. 이 요강은 전략목표, 지도방침, 전략중점, 전략임무, 중점조치 등으로 구성되는 방대한 국가 정책이다. 일본의 지식재산입국 전략을 벤치마킹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美·中·日 '특허 삼국지'…정부가 앞장서 '지식재산 무기고' 관리



허재관 특허법인 이지·(주)이지펙스 부사장
gbo1196@gmail.com

△IPMS 초대 회장 및 대한변리사회 사무총장 역임 △현 고려대 겸임교수(캠퍼스CEO과정),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저서 ‘기술거래가이드’ ‘지식재산전략’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