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울릉도 소년의 기적
소년은 용감했다. 처지에 주눅들지도 않았다. 낯선 땅 낯선 사람들, 엄청나게 차이 나는 실력. 그는 그러나 겁 먹고 포기하거나 힘들다고 주저앉는 대신 그저 죽어라 공부했다. 성적은 쉽게 오르지 않았다. 기초가 달리는 데다 다른 학생이라고 놀고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끈기의 힘은 실로 무서운 법. 졸업생이 6명뿐인 섬중학교 출신으로 자립형(현 자율형) 사립고 입학 후 1년간 바닥을 기던 소년은 올해 서울대 인문학부에 합격했다. 인간승리의 주인공은 3년 전 울릉북중학교를 나와 집에서 500㎞ 떨어진 전주 상산고에 들어간 박민혁군.

2008년 말 박군의 부모는 상산고에 전화해 박군을 입학시켜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해 처음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했던 상산고에선 학생을 오라고 하는 대신 교감과 수학교사를 울릉도로 보냈다. 박군의 실력을 테스트한 이들은 당장의 점수에 상관없이 가능성과 의지를 인정했다.

‘입학사정관제 1호’로 들어갔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첫 진단고사에서 받은 수학 점수는 37점. 384명 중 꼴찌였다. 최하위반에 배정됐지만 그는 꿋꿋했다. 과목과 교사를 택할 수 있는 특강을 이용했고, 1학년 여름방학 땐 ‘400시간 프로젝트’를 세웠다. 40일 동안 수학만 하루 10시간씩 공부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결과는 1학년이 다 가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2학기 기말고사 성적도 형편없었다. 전국에서 몰려든 우수한 학생들과의 경쟁은 힘겨웠다. 하지만 꾸준히 노력한 결과 2학년 들어선 중위권으로 올라섰고, 3학년이 되자 상위권에 진입했다. 2012년 대입수능시험에서 그는 수리‘나’형과 사회탐구에서 만점을 받고, 언어와 외국어 영역에서 1문제씩 틀렸다.

정시에 도전해도 되는 점수지만 수시에 지원,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3년 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공부는 박군의 몫이었지만 그 뒤엔 주위의 사랑과 후원도 있었다. 입학 후 형편이 어려운 그를 위해 상산고 기능직 직원들이 쌈짓돈을 모아 내놓았고, 한 음식점 주인은 매달 용돈을 주는 등 양부모 역할을 했다.

당사자의 의지와 노력, 학교의 믿음과 성원, 이웃의 사랑과 격려가 더해져 기적을 일군 셈이다. ‘사랑은 가시덤불 속에 갇힌 인간을 저 높은 승리의 길로 이끈다’는 건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의 말이다. 섬소년의 기적은 확률에 붙들리지 말라던 피터 번스타인(‘신을 거역한 사람들’ 저자)의 외침도 떠오르게 한다. “우리의 삶은 숫자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숫자엔 영혼이 없다.”

박성희 <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