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삼성그룹은 잔뜩 고무돼 있었다. 주력 계열사 삼성전자가 작년 연간 기준으로 매출 154조6000억원, 영업이익 17조3000억원이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기 때문이다. 삼성 내부에선 글로벌 정보기술(IT)·전자 분야에서 더이상 적수가 없다는 말도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위기는 동시다발적으로 닥쳤다. IT 최대 승부처인 스마트폰에선 애플과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데다 주력 사업인 반도체 경기는 불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다른 계열사들도 큰 성과를 내지 못했고 신수종사업 추진성과는 지지부진했다.

이건희 회장이 나섰다. 이 회장은 지난 3월8일 해외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제대로 된 물건을 세계시장에 내서 그걸 1등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만심을 버리고 ‘1등주의’를 재추진하라는 경고이자 주문이었다.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난 지금, 이 회장의 주문은 결실을 맺었다.

대표적인 분야가 스마트폰이다. 작년 1분기까지만 해도 삼성전자는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4위에 그쳤다. 애플은 물론 핀란드 노키아와 캐나다 RIM에도 크게 밀렸다.

올해 1분기에도 1260만대로 애플(1860만대)보다 600만대가량 뒤졌다. 2분기 애플과의 격차를 30만대 정도로 좁히며 판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3분기엔 무려 2810만대의 스마트폰을 팔아 애플(1707만대)과의 격차를 1000만대 이상으로 벌렸다. 사상 처음으로 세계 1등에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삼성 관계자가 “우리도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애플을 따라잡을 줄 몰랐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놀랄 만한 성과다.

삼성전자는 TV와 반도체 등 기존 사업에서도 1등 자리를 굳건히 다졌다. TV의 경우 2006년 이후 6년 연속 세계 1등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3분기 점유율은 22.1%로 2위인 LG전자(14.5%)와 8%포인트가량 격차를 벌렸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도 확고한 1위를 지키고 있다. D램은 지난 3분기 역대 최고인 45%의 점유율로 경쟁사들을 압도했다.

삼성SDI는 2차 전지 분야에서 2년 연속 1위에 올랐다. 2009년 일본 산요(점유율 20.1%)에 밀려 2위(점유율 18.4%)였던 삼성SDI는 작년 20%의 점유율로 산요(19.3%)를 제치고 첫 1위에 올랐다.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분야에선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가 독주하고 있다. 전 세계 OLED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독보적이다. 삼성 관계자는 “작년까지 세계 1등에 오른 제품이 TV 모니터 D램 LCD패널 등 20개 정도인데 올해 스마트폰이 추가됐다”며 “월드베스트(세계 1등제품) 50개로 늘린다는 목표는 순항 중”이라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