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에 취항하는 외국 항공사들은 내년 1월부터 온실가스 배출 부담금을 물어야 한다. 미국과 중국 등이 EU의 조치에 반발하고 있어 무역분쟁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온실가스 정책 헤게모니 싸움

유럽 오가는 모든 항공사 탄소배출권 사야
유럽사법재판소(ECJ)는 21일(현지시간) “EU에 취항하는 외국 항공사에 탄소배출권을 구입하도록 의무화한 EU의 조치는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EU는 2007년 11월부터 역내에 취항하는 모든 항공사를 탄소배출권 거래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해왔고 내년부터 이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캐나다 항공사들이 이에 반발해 ECJ에 제소했지만 이날 패소했다.

빅토리아 뉼런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판결 후 “ECJ의 결정에 실망했다”고 말했고, 류웨이민(劉爲民)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EU의 일방적인 행위에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항공업계에서는 이번 조치로 전 세계 150여개국 4000여개 항공사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번 판결은 환경보호를 명분으로 한 무역장벽”이라며 “무역전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중국 외에 캐나다 러시아 인도 등도 EU의 결정에 반대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EU 조치에 반대하는 국가들은 모두 교토의정서에 가입하지 않았거나 탈퇴를 결정한 국가들이다. 교토의정서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규정한 협약으로, 미국 중국 인도 등은 가입국이 아니고 캐나다 러시아 등은 2013년부터 협약 탈퇴를 선언했다. 선진국 중 사실상 EU만이 유일하게 교토의정서 가입국으로 남아 있다. 항공사 탄소배출권 구입 의무화를 둘러싼 논란은 온실가스 정책에서 헤게모니를 쥐려는 EU와 그에 반발하는 국가들 간 갈등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독일 주간 슈피겔은 “유럽과 다른 대륙 간에 격렬한 온실가스 무역전쟁이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항공료 인상 가능성 높아져

로이터통신은 EU가 역내 취항 항공사에 5억유로(7535억원) 정도를 부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부담금 규모는 2020년 90억유로(13조5640억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마이크 밀러 미국 항공산업연합회 부회장은 “온실가스 배출 부담금으로 비행기 티켓 가격이 70~90달러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항공사들의 모임인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역시 EU의 조치에 부정적이다. EU를 시작으로 각국이 경쟁적으로 항공사에 추가 세금을 물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