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
이재무

[이 아침의 시] 겨울나무
이파리 무성할 때는

서로가 잘 뵈지 않더니

하늘조차 스스로 가려

발밑 어둡더니

서리 내려 잎 지고

바람 매 맞으며

숭숭 구멍 뚫린 한 세월

줄기와 가지로만 견뎌보자니

보이는구나, 저만큼 멀어진 친구

이만큼 가까워진 이웃

외로워서 단단한 겨울나무


[이 아침의 시] 겨울나무
잘나갈 땐 미처 보지 못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뛰어난 줄만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이파리 없는 줄기가 어디 있으며, 줄기 없는 뿌리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 그림자에 가려 발밑도 하늘도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 ‘바람 매 맞으며/ 숭숭 구멍 뚫린 한 세월’을 맨몸으로 견디는 순간에야 ‘저만큼 멀어진 친구’나 ‘이만큼 가까워진 이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결빙의 땅에서 지금까지 스스로를 지탱해온 힘이 ‘외로워서 단단한 겨울나무’의 뿌리였다는 것도 뒤늦게 깨닫습니다. ‘서리 내려 잎 지고’ 난 뒤에야 만나는 ‘세상’과 ‘나’ 사이의 숨겨진 숲길.

고두현 문화부장·시인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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