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온 이메일 중에서 꼭 봐야 할 게 있으면 추려주세요.”

내년에는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이용자의 말을 알아듣고 의도를 추론해 작동하는 인공지능(AI) 기반 서비스를 앞다퉈 내놓을 계획이기 때문이다. 공상과학(SF) 소설에나 나오던 인공지능 상용화가 목전에 다다른 것이다.

IT업계의 인공지능 경쟁에서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애플이다. 애플은 10월 스마트폰 ‘아이폰4S’를 발표하면서 음성인식 기반의 개인 비서 서비스 ‘시리(Siri)’를 함께 공개했다. “서울 광화문 근처에서 추천할 만한 중식당을 알려달라”고 말하면 여기에 맞춰 검색 결과를 내놓는 식이다. 본격적인 인공지능 서비스라고 보기에는 한계가 많지만 향후 빠르게 기능을 발전시킬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라이벌 업체 구글도 인공지능 서비스를 조만간 내놓는다. 미국 IT 전문매체 안드로이드앤드미는 구글이 ‘마젤(Majel)’이라는 개인 비서 서비스를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구글의 한 직원은 블로그를 통해 “‘자유의 여신상’을 보여달라고 말하면 자동으로 이미지 위치 백과사전 내용을 인터넷 화면에 표시해준다”며 “애플의 시리보다 훨씬 낫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구글 직원도 “인공지능의 성능을 측정하는 ‘튜링테스트’에서 몇 달 전 93%라는 높은 결과를 얻어냈다”고 말했다. 튜링테스트는 실제 인간이 단말기와 소통할 때 상대방이 기계인지, 사람인지 눈치채지 못할 확률을 계산하는 인공지능 성능 측정 기법이다. 눈치채지 못할수록 인공지능 성능이 높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몇 년 전부터 오피스 프로그램의 인공지능화를 연구하고 있다. 유명 인공지능 전문가 에릭 호로비츠가 이끄는 연구진은 개인 비서처럼 이메일과 스케줄을 챙겨주고 문서 정리와 작성을 돕는 기능을 연구하고 있다. 호로비츠는 “이용자의 미묘한 맥락과 감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IT업체들은 인공지능 기술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개인 비서’ 기능을 활용해 ‘맞춤형 비즈니스’ 기회를 확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이용자의 기호와 생활방식을 수집, 여기에 맞는 광고를 내보낼 수 있는 것이다. 이강윤 한국IBM 연구소장(상무)은 “‘데이터 폭발’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데이터가 늘고 있지만 인간이 일일이 처리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수많은 정보를 이용자 수요에 맞게 분석·가공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중요해지는 또 다른 이유”라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태블릿PC 스마트TV 등 이용자가 접하는 기기가 늘어나는 상황도 인공지능 기술이 중요해지는 배경이다. 구글의 연구·개발(R&D) 분야를 이끌고 있는 피터 노빅은 “키보드와 마우스만으로는 부족한 시대가 왔다”며 “음성이나 동작 등 사람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메시지 전달 수단을 바로 이해해 처리하는 기술이 각광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서비스는 크게 다섯 가지 기술 분야로 나뉜다. △음성 인식·동작 인식 등 인터페이스의 인간화 △인간이 사용하는 문장 형태의 자연어 분석 △이용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상황 인지’ 기술 △기계가 스스로 정보를 수집·인식·분석하는 ‘시맨틱 웹’ △대용량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기술 등이다. 김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은 “분야별로 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만 종합하면 한국의 기술력은 미국 대비 5년 정도는 뒤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