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발암(發癌) 실리콘
기원전 2세기 그리스에서 만들어졌다는 ‘밀로의 비너스’는 여성의 몸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조각작품으로 꼽힌다. 왼발을 들고 상체를 살짝 뒤튼 모습은 앞, 뒤, 옆 어떤 각도에서 봐도 S라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가슴과 엉덩이의 비율도 1 대 1.6으로 알맞게 나뉘어 있다. 가슴의 생김새 역시 둥그스름한 원추형으로 신체에 비해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클레오파트라의 연인 안토니우스는 투구만 한 크기의 금잔에 술을 따라 두 손으로 들고 마시길 즐겼다고 한다. 그 이유는 금잔이 클레오파트라의 가슴을 모형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었단다. 요즘도 널리 쓰이는 둥그스름한 포도주잔은 베르사유의 장미로 통했던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가슴라인을 본떠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지금도 여성 가슴의 이상적인 크기를 ‘와인 잔에 딱 들어갈 정도’로 본다.

독일 문화인류학자 잉겔로레 에버펠트는 여성들이 아름다운 가슴에 집착하는 까닭을 종족번식의 본능과 연결시켜 해석한다. ‘멋진 암컷’이 ‘강한 수컷’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매력적 가슴으로 이성을 유혹하려는 시도가 무의식 중에 이뤄진다는 거다. 그래선지 예쁜 가슴을 갖기 위한 여성들의 노력은 필사적이다. 19세기 후반 등에 붙은 지방을 떼어내 가슴에 이식하는 수술이 처음 시행된 이래 가슴성형은 날로 발전해왔다. 이젠 식염수에서부터 실리콘 젤까지 다양한 합성물을 주입해 자유자재로 크기를 키우고 모양을 바꾼다.

이렇다 보니 부작용이 없을 리 없다. ‘돌팔이’ 수준에서 단발성으로 생기는 부작용은 그렇다 쳐도 대규모 피해 사례도 끊이지 않는다. 1980년대 미국 다우 코닝사의 유방 확대 실리콘이 위험물질로 지목돼 대규모 소송이 벌어지더니 이번엔 세계 3위의 유방 실리콘 업체인 프랑스 PIP사가 논란에 휩싸였다. 65개국, 30여만명에게 시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실리콘은 파열되거나 암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프랑스 정부는 시술받은 여성들에게 보형물 제거를 권하면서 비용은 국가가 지불하겠다고 밝혔고, 영국 독일에서도 의사와 상담을 추천하고 있다.

모든 수술이 그렇듯 가슴 성형도 자칫하면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낳는다. 욕망은 늘 위험을 감수한다지만 이 시대 가슴가꾸기의 과감성은 도를 넘은 느낌이다. 뭐니뭐니해도 여성의 가슴은 아이에게 젖을 정성스레 먹일 때 가장 아름다워지는 게 아닐지.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