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농어업 분야에 지난 4년간 6조5000억원을 쏟아부었지만 농업 경쟁력은 오히려 후퇴했다고 농민들은 말한다. 지금이라도 한·미 FTA 대책을 ‘기업농 육성을 통한 농업 대규모화’로 가닥을 잡고 FTA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농림어업 총생산 기여도 급감

시설만 현대화 한다고 농민들 저절로 기업농 되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에서 농림어업이 차지한 비중은 2.6%다. 2006년(3.2%)보다 크게 줄었다. 2008년부터 FTA 지원금이 예산에 반영됐으나 GDP에서 농림어업 비중은 2007년 2.9%에서 매년 조금씩 하락해 지난해에는 2.5%로 떨어졌다.

해외시장 개척도 부진하다. 가공식품을 제외한 신선농식품 수출은 2008년 6억7500억달러에서 지난해 8억7380억달러로 늘다가 올 들어 다시 주춤해졌다.

정부의 막대한 농업 예산 지원이 농업 경쟁력을 키우기는커녕 농민들의 삶만 더 팍팍해지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혹평도 나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농가의 가구당 평균 소득은 지난해 3212만원으로 2006년(3230만원)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농가 빚은 한·미 FTA 관련 예산이 지원되기 시작한 2008년 가구당 2578만원에서 지난해 2721만원으로 오히려 늘었다. 정부의 무상 보조금을 받으려면 대출을 일정 비율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FTA 대책 실효성 없어

한·미 FTA 지원금이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은 오래 전부터 예견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의 이호중 연구기획팀장은 “정부가 원래 하고 있거나 할 계획이던 사업들의 이름만 빌려 묶어놓은 게 FTA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FTA 대책이 미국 유럽 등과 경쟁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정책들을 긁어모았다는 지적이다.

새로 확충된 지원 대책들이 선심성 차원에서 급조되는 것도 문제다. 정부는 2009년부터 축산농가에 시설을 고치면 80%(30% 무상보조금, 50% 저리 융자)를 지원해왔다. 3년간 전업 농가 2200여곳에 혜택을 줬다. 전국 100여개 원예전문생산단지에 들어선 비닐하우스와 유리온실을 보강해도 80%를 주고 있다. 농가의 낡은 시설을 바꿔주면 경쟁력이 살아날 것이라는 단편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정책이다. 내년에는 이 같은 종류의 시설 현대화사업 지원 대상이 대폭 늘어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립대 교수는 “정부의 FTA 대책은 ‘유망한 분야를 선별해 집중적으로 규모를 키우고 가격·품질 경쟁력을 높여주는 정책’과 ‘영세 농가가 농업을 그만두도록 유도하는 직접지원 정책’이 병행돼야 하지만 정부의 대책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기업농 육성 규제는 그대로

전문가들은 기업이나 전문투자자들이 자본과 인력을 투입해 기술집약적인 첨단 농업을 대규모로 경영하면 국내 농업도 승산이 있다고 말한다. 김병률 한국농어촌경제연구원 미래정책연구실장은 “한국의 농업기술은 선진국의 70% 수준으로 자본과 인력만 투입되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의지다. 영세한 고령 농가를 줄이기 위해 2008년 고령농이 매도·임대를 통해 경영을 이양하면 보조금을 주는 경영이양직불금을 확대했지만 목표의 절반도 달성하지 못했다.

전문 기업농 육성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도 많다. 농지법은 농업회사법인이 농지를 소유하려면 회사 내 업무 집행권을 가진 사람들 중 3분의 1 이상은 농민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이 요건을 폐지하는 농지법 개정안을 지난 8월 국회에 제출했지만 올해 안에 통과가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도 그다지 의욕을 보이지 않고 있다. 내년 농식품부 업무보고에는 아예 이 내용이 빠져 있다.

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경자유전의 낡은 원칙에 얽매인 규제들이 많아 대규모 영농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대형 유통업체 등도 농업회사법인을 만들 수 있도록 문호를 더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