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저축은행 추가폭발 사전 차단을
《가장 절묘한 은행털이는 은행을 직접 인수하는 것이다》 미국 텍사스대의 윌리엄 K 블랙 교수가 금융사기를 분석한 책 제목이다. 우리나라 저축은행 사태를 제대로 빗댄 뜨끔한 책이다.

작년 12월 중순 필자는 ‘저축은행 대폭발의 징후’라는 다소 자극적인 칼럼을 일간지에 게재했었다. 부실채권으로 자본잠식 상태인 저축은행이 고금리를 미끼로 예금유치에 나서는 것은 돌려막기 폰지(Ponzi) 사기의 전형임을 지적했다. 연말에 금융위원장이 경질됐고 올해 들어 2월부터 삼화저축은행을 시작으로 부산, 토마토, 제일 등 대형 업체부터 차례로 문을 닫았다.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에는 예금보험공사 정리단이 파견돼 대출채권과 예금채무를 정산한다. 부실 대출서류와 먹통 전산망으로 난장판인 상황에서 국민부담 기금을 쏟아 붓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가 업계 공동기금 2000억원을 투입한 하나로저축은행도 아주캐피탈에 공짜로 넘긴다. 4대 금융지주사와의 매각계약도 공적기금을 잔뜩 퍼붓고 체면치레용 푼돈을 받는 눈물의 세일이다.

저축은행 검찰수사에는 대주주 불법대출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부실대출과 달리 불법대출은 그 자체가 범죄행위다. 대출이 금지된 대주주가 지인 명의를 빌리거나 타인 명의를 도용해 대출금을 착복한다. 불법대출은 일정 기간 경과 후 부실채권으로 대손처리해 흔적을 지운다. 대규모 불법대출이 저축은행 문제의 본질이며, 이에 대한 예방책을 찾는 것이 당면과제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사업상 불량채권은 출자전환이나 추가자금 지원을 통한 회수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나 대주주나 임직원이 리베이트나 뇌물을 챙긴 배임혐의가 있는 경우에는 불법대출로 분류해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

불법대출로 조성된 불법자금을 권력층에 뇌물로 뿌린 범죄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런 범죄는 정상영업 중인 중소 저축은행에도 퍼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저축은행 비호세력은 정상적 구조조정까지 가로막는다. 예금보호한도를 6000만원으로 소급인상해 원금 5000만원 예금도 이자까지 모두 물어주자는 ‘저축은행 피해자 구제법’ 의원 발의까지 등장하고 있다.

저축은행 수사가 대통령 친인척과 친형 이상득 의원 보좌관까지 확대된 상황이라 정치권과 감독당국은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PF대출 부실이 악화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저축은행 금융안정기금’ 신청이 한 건도 없다. 영업정지된 대형업체보다 나을 것 없는 상황에서 중소 저축은행이 믿는 동아줄은 무엇일까? 혹시 권력층에 뿌려놓은 뇌물의 약발을 기대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새해에도 저축은행이 크게 요동칠 일이 많다. 신한금융의 토마토, KB금융의 제일, 우리금융의 삼화, 하나금융의 에이스 인수절차가 마감되면 은행과 저축은행의 예금금리 차이는 대폭 축소될 것이다. 금융지주사 계열은 예금보호한도가 무의미해져 고액예금 유치경쟁이 가열될 것이다. 4월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는 정치신인이 불법대출 추적에 나서 추가폭로가 이뤄지면 저축은행에 대한 불신이 확대돼 예금인출사태가 재발할 가능성도 높다. 대통령 측근이 연루됐기 때문에 저축은행 사태의 폭발력은 연말 대선까지 이어질 게 분명하다.

저축은행 추가폭발을 막기 위해 금융당국이 고삐를 다잡아야 한다. 대출절차 전반에 대한 전산처리를 의무화하고 전산에 의한 실시간 감사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불법대출에 대한 최고 5년 징역형을 20년까지 높이고 착복한 돈은 끝까지 추적하는 시스템을 완비해야 한다. 이미 발생한 불법대출에 대해 강력한 회수활동을 전개해 불법대출 유혹을 미리 차단해야 한다. 건전성 평가에 따른 예금 보험료와 보호한도 차등적용을 속히 시행해야 한다. 저축은행이 새로운 경쟁환경과 감독체제에 따라 자발적 구조조정에 나서야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