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제 '트라이펙터' 해빙조짐…'1월효과' 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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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골드만 "美 4분기 3.5% 성장"…내년 글로벌 증시 버팀목될 수도
골드만 "美 4분기 3.5% 성장"…내년 글로벌 증시 버팀목될 수도
이달 들어 미국 경제가 ‘트라이펙터(trifecta)’에서 벗어날 조짐이 뚜렷하다. 한 나라 경제에서 트라이펙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경기선행과 동행, 후행지표가 동시에 부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경제는 2009년 2분기를 저점으로 당초 기대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이 때문에 올 상반기에는 적극적 의미의 출구전략인 기준금리 인상까지 거론됐다. 하지만 올 8월 초 신용등급이 떨어진 뒤엔 곧바로 비관론이 거론될 정도로 침체 조짐이 뚜렷했다. ‘미국 경제 붕괴’라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극단적 비관론이 나왔던 때가 불과 3개월 전이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뒤에 판명하겠지만, 이때 미국 경제는 경기 회복의 전형적 경로인 선행과 동행, 후행지표 간에 앞 말이 뒤 말을 끌어주는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가 나타나지 않는 일종의 미스매치 기간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뒤 지표가 조금만 좋게 나오면 낙관론이, 안 좋게 나오면 비관론이 반복되면서 증시도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다.
이런 상황에서 트라이펙터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미 경기 전망과 관련해 커다란 의미가 있다. 정책적으로도 ‘로코프 독트린’과 ‘크루그먼 독트린’, 후자 입장에서 추진됐던 오바마 정부의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기부양책, ‘그린스펀 독트린’과 ‘버냉키 독트린’ 간 논쟁의 결론을 낼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된 이후 미국 경제 앞날을 보는 시각은 ‘누들 볼 효과(noodle bowl effect)’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흐트러졌었다. 낙관론에는 회복세가 빠를 것이라는 ‘소프트 패치’와 완만할 것이라는 ‘라지 패치’로, 비관론도 저점이 두 개 형성될 것이라는 ‘더블딥’에 이어 한 번 더 깊은 골이 찾아올 것이라는 ‘트리플딥’으로 나뉘었다.
인플레이션과 관련해 경기침체 아래 물가가 올라갈 것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은 3년 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제로(0) 금리와 양적완화로 상징되는 비정상적인 유동성 공급정책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지난 9월에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슬럼플레이션’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요즘처럼 트라이펙터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미국 경제 앞날과 관련한 이런 다양한 시각이 이제는 가닥이 잡힌다는 의미다. 골드만삭스 등은 올 4분기 성장률을 3.5% 내외로 추정하고 있다. 미 경제 잠재성장률이 3%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0.5%포인트 정도의 인플레이션 갭이 발생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미국 경제가 좋아진다면 정책적으로도 ‘쌍둥이 독트린’ 논쟁이 결론날 수 있다. 위기 이후 재정정책 우선순위를 적자 축소에 둬야 한다는 ‘로고프 독트린’과 경기부양에 둬야 한다는 ‘크루그먼 독트린’ 간 논쟁이 지속됐다. 통화정책 대상과 관련해선 실물경기만 고려해야 한다는 ‘그린스펀 독트린’과 자산시장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버냉키 독트린’으로 양분됐다.
극으로 치달았던 논란 속에 지난 9월 이후 경기 재둔화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크루그먼 독트린’ 시각에서 재정적자 축소보다 경기를 부양하는 쪽으로 재정정책을 선택했다. 재정적자 우려로 2차대전 이후 유지해 왔던 ‘트리플 A’라는 신용등급까지 강등된 직후에 재정적자를 확대시킬 수 있는 부양책을 선택하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나 마찬가지다. 버냉키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자신의 신념대로 부양 기조를 고수했다.
특히 9월 이후 오바마 정부의 부양책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단순히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청년층을 위주로 일자리 창출에 우선순위를 뒀다는 점이다. 더 이상 고용이 종속변수가 아니라 독립변수화하는 추세와 반(反)월가 시위 등을 고려한 정책이다. 정책 결과에 따라서는 앞으로 더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여지를 남기게 하는 대목이다.
증시에서도 트라이펙터에서 벗어날 조짐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 내년 증시가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는 경기와 자금, 투자성향 면에서 세 가지 ‘패러다임 시프트’, 즉 구조 변화가 제대로 이행되느냐에 달렸다고 월가는 보고 있다. 짧게는 불과 며칠 앞으로 다가온 새해 첫 달에 기대되는 ‘1월효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다.
세 가지 패러다임 시프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에 의해 주도돼 온 경기가 민간 주도로 넘어갈 수 있느냐다. 특정국 경기가 민간 자발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용과 설비투자, 그중에서 고용이 늘어야 한다. 트라이펙터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인다는 것은 이런 여건이 충족되고 있다는 의미다.
재정정책 시차와 케인시안의 통화정책 전달 경로, 미국 통계기법상 기조효과 등을 감안하면 최근 미국 경제의 트라이펙터 해빙 조짐이 오바마 정부와 Fed의 정책 결과인지는 좀 더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유럽 위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등 잇따른 악재에도 미국 경제와 증시가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미국 경제는 2009년 2분기를 저점으로 당초 기대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이 때문에 올 상반기에는 적극적 의미의 출구전략인 기준금리 인상까지 거론됐다. 하지만 올 8월 초 신용등급이 떨어진 뒤엔 곧바로 비관론이 거론될 정도로 침체 조짐이 뚜렷했다. ‘미국 경제 붕괴’라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극단적 비관론이 나왔던 때가 불과 3개월 전이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뒤에 판명하겠지만, 이때 미국 경제는 경기 회복의 전형적 경로인 선행과 동행, 후행지표 간에 앞 말이 뒤 말을 끌어주는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가 나타나지 않는 일종의 미스매치 기간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뒤 지표가 조금만 좋게 나오면 낙관론이, 안 좋게 나오면 비관론이 반복되면서 증시도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다.
이런 상황에서 트라이펙터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미 경기 전망과 관련해 커다란 의미가 있다. 정책적으로도 ‘로코프 독트린’과 ‘크루그먼 독트린’, 후자 입장에서 추진됐던 오바마 정부의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기부양책, ‘그린스펀 독트린’과 ‘버냉키 독트린’ 간 논쟁의 결론을 낼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된 이후 미국 경제 앞날을 보는 시각은 ‘누들 볼 효과(noodle bowl effect)’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흐트러졌었다. 낙관론에는 회복세가 빠를 것이라는 ‘소프트 패치’와 완만할 것이라는 ‘라지 패치’로, 비관론도 저점이 두 개 형성될 것이라는 ‘더블딥’에 이어 한 번 더 깊은 골이 찾아올 것이라는 ‘트리플딥’으로 나뉘었다.
인플레이션과 관련해 경기침체 아래 물가가 올라갈 것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은 3년 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제로(0) 금리와 양적완화로 상징되는 비정상적인 유동성 공급정책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지난 9월에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슬럼플레이션’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요즘처럼 트라이펙터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미국 경제 앞날과 관련한 이런 다양한 시각이 이제는 가닥이 잡힌다는 의미다. 골드만삭스 등은 올 4분기 성장률을 3.5% 내외로 추정하고 있다. 미 경제 잠재성장률이 3%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0.5%포인트 정도의 인플레이션 갭이 발생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미국 경제가 좋아진다면 정책적으로도 ‘쌍둥이 독트린’ 논쟁이 결론날 수 있다. 위기 이후 재정정책 우선순위를 적자 축소에 둬야 한다는 ‘로고프 독트린’과 경기부양에 둬야 한다는 ‘크루그먼 독트린’ 간 논쟁이 지속됐다. 통화정책 대상과 관련해선 실물경기만 고려해야 한다는 ‘그린스펀 독트린’과 자산시장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버냉키 독트린’으로 양분됐다.
극으로 치달았던 논란 속에 지난 9월 이후 경기 재둔화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크루그먼 독트린’ 시각에서 재정적자 축소보다 경기를 부양하는 쪽으로 재정정책을 선택했다. 재정적자 우려로 2차대전 이후 유지해 왔던 ‘트리플 A’라는 신용등급까지 강등된 직후에 재정적자를 확대시킬 수 있는 부양책을 선택하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나 마찬가지다. 버냉키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자신의 신념대로 부양 기조를 고수했다.
특히 9월 이후 오바마 정부의 부양책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단순히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청년층을 위주로 일자리 창출에 우선순위를 뒀다는 점이다. 더 이상 고용이 종속변수가 아니라 독립변수화하는 추세와 반(反)월가 시위 등을 고려한 정책이다. 정책 결과에 따라서는 앞으로 더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여지를 남기게 하는 대목이다.
증시에서도 트라이펙터에서 벗어날 조짐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 내년 증시가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가는 경기와 자금, 투자성향 면에서 세 가지 ‘패러다임 시프트’, 즉 구조 변화가 제대로 이행되느냐에 달렸다고 월가는 보고 있다. 짧게는 불과 며칠 앞으로 다가온 새해 첫 달에 기대되는 ‘1월효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다.
세 가지 패러다임 시프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에 의해 주도돼 온 경기가 민간 주도로 넘어갈 수 있느냐다. 특정국 경기가 민간 자발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용과 설비투자, 그중에서 고용이 늘어야 한다. 트라이펙터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인다는 것은 이런 여건이 충족되고 있다는 의미다.
재정정책 시차와 케인시안의 통화정책 전달 경로, 미국 통계기법상 기조효과 등을 감안하면 최근 미국 경제의 트라이펙터 해빙 조짐이 오바마 정부와 Fed의 정책 결과인지는 좀 더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유럽 위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등 잇따른 악재에도 미국 경제와 증시가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