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정책 혼선을 빚고 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 출범 후 기존에 정책위가 추진하던 주요 복지정책이 뒤집히면서 당·정·청 간 이견이 심화되는 건 물론이고 친박계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박 위원장이 제안한 구직 중인 청·장년층에 일정 기간 월 30만(만 29세 이하)~60만원(만 49세 이상)씩 정부가 주는 취업활동 수당이다. 한 친박계 의원은 “박 위원장이 추진하고 있는 취업활동 수당에 대한 ‘선의’는 의심치 않지만 현실에 적용하면 많은 문제가 있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은 청년층을 9만명, 장년층을 16만명으로 보고 각 4개월간 지급할 경우 필요한 돈을 연 4000억원으로 계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1조원을 넘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산이다.

이 의원은 “이미 실업 수당을 주고 있는데, 취업이 어렵다고 정부가 다시 돈을 줄 경우 근로 의욕 상실과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며 “내년부터 복지 예산이 많이 들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까지 세금을 쓰는 건 포퓰리즘”이라고 우려했다.

친박계 경제통 의원들도 비슷한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박 위원장이 올 초부터 검토해온 근로장려세제(EITC) 강화에도 반대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히진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정부가 함께 추진해온 서울대와 지방 교대를 제외한 ‘국립대 반값등록금’ 정책은 박 위원장이 한나라당 전면에 나서면서 일단 유보 쪽으로 가고 있다. 재원은 내년 대학 등록금 관련 예산 1조5000억원에 추가한 4000억원이다.

박 위원장은 이 돈을 ICL(취업 후 학자금 대출 상환제도)로 돌리는 데 무게를 싣고 있다.

현재 연 4.9%인 ICL의 이자를 3.9%로 낮추고 대상을 현재 소득 하위 70%에서 전체로, 학점 기준도 B 이상에서 C 이상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당 정책위 관계자는 “정책이 달라질 수는 있는데, 대출 대상을 전체로 하고 학점 기준도 낮추면 부잣집 자식도 낮은 금리의 혜택을 받아 대출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당 고위 당직자는 “기존 당의 정책은 최고위원회의에서 논의돼 정책위원회가 주도적으로 추진했는데, 이젠 모든 것이 박 위원장에게 쏠리고 있다”고 전했다.

당장 정부와 정책 조율이 원활하지 못하다. 이날 열리기로 돼 있던 당·정·청 고위 회동은 취소됐다. 박 위원장의 정책에 정부가 난색을 표하고 박 위원장이 불참을 통보한 탓이다.

정부는 당분간 당·정 간 예산심의의 엇박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새해가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예산편성 방향을 수정하자는 것 자체가 무리 아니냐”며 “당이 청와대와의 거리두기에 나서면서 민생을 책임지는 정부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후/이심기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