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수 없었지만 꿈같은 68년 … 죽음 앞에서 감사할 뿐"
“젊은이 여러분, 오늘의 고난과 역경은 미래의 영광과 축복을 가져다주는 통로입니다.”

강영우 박사(68)는 차분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시각장애인으로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장애위원(차관보급)을 지낸 강 박사. 그는 이달 초 병원에서 한 달밖에 살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지난 10월 담석으로 병원을 찾아 정밀검사를 할 때만 해도 나타나지 않았던 췌장암이 발견됐다. 의사는 ‘한 달 남짓의 시간밖에 없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선고를 내렸다.

강 박사는 크리스마스인 25일(현지시간)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전화통화에서 “제 자신이 생각해도 꿈 같은 인생을 살았다”면서 “그러기에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기쁘게 갈 수 있다”고 담담함을 잃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 외상으로 두 눈을 잃은 그는 연세대 문과대를 졸업한 뒤 1972년 미국에 건너왔다. 이후 피츠버그대에서 교육전공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인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였다.

앞서 강 박사는 크리스마스 이틀 전 지인들에게 생애 마지막이 될지 모를 이메일을 보냈다. “누구보다 행복하고 축복받은 삶을 살아 온 제가 이렇게 주변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시간을 허락받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두 아들에 대한 자부심도 전했다.

그는 “50년 전 서울맹학교 학생이었던 저는 자원봉사자 여대생인 아내를 처음 만났다”면서 “10년 뒤 그 예쁜 누나에게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자며 비전이 담긴 이름 석자를 지어 선물하며 프러포즈를 했다”고 회상했다. 그가 아내에게 지어준 이름 ‘석은옥’은 석(石)의 시대 10년 동안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유학을 하는 꿈을 갖고 그후 은(銀)의 시대 10년 동안은 행복한 가정에서 자녀들을 잘 양육하자는 의미를 부여했다. 이후 옥(玉)의 시대 10년은 나은 세상을 위해 눈뜬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꿈을 꾸자는 뜻이다. “이런 비전과 목표를 향해 가니 이를 같이 공유하려면 내게 시집오라고 했죠”라고 그는 말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 속에서 우리 부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두 아들이 미국 주류사회의 리더로서 아버지보다 훨씬 훌륭한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남인 진석씨(영어이름 폴)는 30만번 이상 백내장 굴절수술을 집도해 워싱턴포스트가 선정한 ‘2011년 최고 슈퍼닥터’에 뽑혔다. 차남 진영씨(크리스토퍼)는 지난 8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선임 법률고문으로 임명돼 아버지를 이어 2대째 백악관에서 일하고 있다. 법률 전문지 내셔널로저널은 그를 ‘40세 미만 최고 법조인 40명’에 선정하기도 했다.

강 박사가 실천한 삶은 나눔이었다. 19년 전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회복지법인인 국제교육재활교류재단을 설립했다. 국제로터리재단의 평화장학금과 연세대 장학기금을 조성하고 피츠버그대 기념사업에 기부하고 관여했다. 지난해에는 ‘오늘의 도전, 내일의 영광(Today’s Challenges, Tomorrow’s Glory)’이라는 저서를 출간, 젊은이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그는 “섬김과 나눔의 삶 자체가 사회에 남기는 효과는 영원하다”면서 “이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나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는 현실”이라고 못내 아쉬워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