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기적
성탄일 기적 같은 사건들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다는 보도다. 미국에선 가족도 포기한 뇌사 환자가 생명 유지 장치를 제거하기 직전 깨어났다고 한다. 대만 유학생이 2억원짜리 바이올린을 잃었다가 버스 회사의 도움으로 되찾았다는 소식도 있다. 인도네시아에선 지진으로 죽은 줄만 알았던 딸이 7년 만에 돌아왔다는 전언이다. 성탄일 기적을 믿는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빅뉴스가 아닐 수 없다.

기적의 영어 단어 미러클(miracle)은 라틴어 미라쿠룸(miraculm)에서 유래됐다. 이 말의 원래 뜻은 ‘미소를 짓게 하는 멋진 일’이라고 한다. 종교학에서는 자연법에 반하는 물리적 사건으로 정의하며 통계학에서는 설명되지 않은 이상치(아웃라이어)로 규정한다.

기적은 기독교 신앙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적을 믿지 않으면 기독교가 성립되지 않는다. 모세의 기적과 바울의 기적 등도 기독교를 있게 하는 근간이다. 갤럽조사에서 미국인의 88%가 기적을 믿는다고 응답한 것은 기독교적 전통이 미국인들에게 배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리바이어던’의 저자 홉스 등 철학자들도 기적을 신의 은총이라고 보았다.

한국인들의 기적에 대한 믿음은 별로 크지가 않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60% 남짓에 불과하다. 기적보다 인연(因緣)설을 더 중시하는 불교 신자들이 많아 그렇다는 것이다.

바티칸에서는 기적 현상을 엄격하게 다룬다. 세계 각국에서 특이 현상을 기적으로 인정해달라는 신청이 모여들지만 공식적인 기적으로 간주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기적 인정 심사도 신학자와 법률가 역사학자 의학자 등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모여 엄격하게 진행한다. 물론 최종결정은 교황이 내린다.

어떻게 보면 종교의 기적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인류가 이만큼 진보하고 있는 것도 기적이요 세계인이 모두 개방하고 소통하고 있는 것도 기적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종교에는 기적이 있을 수 없고 경제에는 기적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해방 후 한국이 세계에 보여준 경제 발전의 기적, 민주화의 기적은 분명히 설명가능한 사회적 기적이다. 프랑스 극작가 장 아누이는 “기적은 신이 인간에게 준 용기와 지성을 잘 활용할 때 이루어진다”고 했다. 땀과 노력 속에 기적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