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성장' 없으면 '동반성장'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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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 불투명…규제 풀어야
톱다운式 분배정책 부작용 커
기업활동 위축시켜서는 안돼"
허윤 < 서강대 교수·경제학 >
톱다운式 분배정책 부작용 커
기업활동 위축시켜서는 안돼"
허윤 < 서강대 교수·경제학 >
사실 정부의 정책은 ‘성장’보다는 ‘동반’을 강조한 측면이 없지 않다. 건강한 경제 생태계를 복원한다는 동반성장의 근본 취지는 좋지만 분배에만 초점을 둔 지금과 같은 밀어붙이기 방식에는 문제가 많다.
더욱이 내년도 세계 경제성장률이 0.1%에 그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속출하고 유럽에서 시작된 재정위기가 남유럽, 북유럽을 거쳐 전 세계로 전이(轉移)되는 현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나라는 올해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 1조달러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지만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앞으로 수출증가세는 둔화되고 소비와 투자 심리까지 위축되면서 내년도 경제성장률은 3.5% 내외에 그칠 전망이다.
고용문제만 해도 그렇다. 정부는 입만 열면 얘기하는 게 서민과 취약계층의 일자리 확대이다. 하지만 각종 정부 규제로 서비스 산업이 꽁꽁 묶여 있는 이 나라에서 그나마 제대로 된 일자리의 창출은 대기업의 과감한 투자 확대와 수출 증대를 통해서나 가능할 뿐이다. 고용효과가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수출이 1% 증가하면 괜찮은 일자리가 약 4만개 늘어난다.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을 맞아 우리 대기업들이 신성장 동력산업을 발굴하고 해외 경쟁업체에 앞장서 공격적 경영활동을 과감하게 펼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한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중소기업 혹은 서민과 ‘동반’할 수 있는 ‘성장’의 여건부터 점검하고 정부 부문이 야기하는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데서 동반성장의 단초를 찾아야 한다. 다 함께 살아가는 자본주의 4.0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 경제는 아직 자본주의 3.0조차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지 않은가.
정부의 향후 불확실성 제거 노력은 기업을 상대로 하는 정부 부처의 각종 조사나 검찰의 수사에 있어서도 굳게 지켜져야 할 것이다. 재벌도 위법이 확인되면 엄벌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반(反)재벌 정서에 편승해 장기적으로, 그것도 무리하게 진행되는 수사방식은 우리 경제 성장의 근간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2010년 9월 시작된 한화 비자금 사건의 경우도 검찰은 뚜렷한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 채 이듬해 1월 말에서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관계자 11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는 마무리됐다. 김승연 회장이 세 차례나 소환되면서 한화는 경영상 심각한 타격을 입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작년 말 이후 1년 넘게 진행되고 있는 SK 수사도 예외가 아니다. 한 해 매출 100조원이 넘는 국내 3대 그룹인 SK가 검찰 수사에 발목이 잡혀 15조원에 달하는 내년도 투자계획과 경영계획 수립을 전면 중단한 상태다.
SK 수뇌부의 경영 공백으로 하이닉스에 대한 투자 지연이 발생할 경우 사태는 심각해진다. 부침(浮沈)이 잦은 세계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감안할 때 이대로 수사가 장기화된다면 하이닉스의 경영 정상화는 물론 앞으로의 생존까지도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동반성장 추진은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대기업을 상대로 동반성장을 요구하기에 앞서 정부는 우리 경제 성장의 기초체력을 스스로 훼손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양한 측면에서 세밀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복지와 분배의 외침 속에 정부의 주도로 정작 성장의 근간이 실종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하기에 하는 말이다.
허윤 <서강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