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투데이] 러시아의 봄은 시작됐다
러시아 역사에는 놀라운 일관성이 있다. 모든 독재정권은 운명적인 사건이나 반대 세력의 맹공격으로 무너지지 않았다. 내부적 문제 때문이었다. 20세기엔 1917년 2월 혁명과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가 그 케이스다.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이 서서히 붕괴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푸틴이 ‘영광스런 업적’이라고 스스로 말했던 일들이 야당 홈페이지에서만 공격받고 있는 게 아니다. 이젠 모스크바 거리,주요 매체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올해 발생한 두 가지 사건은 푸틴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급격히 떨어뜨렸다. 첫 번째 사건은 지난 9월24일 푸틴이 세 번째 대선 출마를 위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부끄러운 거래를 한 것이다. 별로 동요하지 않았던 시민들도 대통령직이 사적인 거래 대상이 되고 헌법이 조롱거리가 되는 것을 목격했다.

푸틴 정권, 합법성 회복 못해

두 번째 사건은 이달 4일 개최된 총선이었다. 명백한 부정선거였으며 정치적 위기를 크게 심화시킨 선거였다. 이런 사건은 푸틴 정권의 합법성을 크게 약화시켰다. 대중들에게는 웃음거리가 되었다. 오는 3월4일로 예정돼 있는 대통령선거에서 푸틴이 공식적으로 ‘승리’하더라도 이는 푸틴 정권의 몰락을 알리는 또 다른 사건일 뿐이다.

최근 러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권위주의를 거부하는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랍의 봄’에서 본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올해 초 이집트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졌던 것처럼 푸틴 역시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다. 이달 10일 6만명 이상의 러시아 국민들이 푸틴에 대항하기 위해 모스크바 거리로 나왔다. 많은 젊은이들이 현 정권 아래에선 어떤 미래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시위 이후 러시아는 달라졌다.

솔리다르노스트(반푸틴 단체)가 시위를 조직했지만 정치적 신념이 다른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이는 성숙한 시민사회가 뿌리 내렸다는 증거다.

퇴진만이 제도적 부패 탈피책

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시위를 막을 방법은 없다.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은 현재 법적·경제적 시스템에는 자유시장제도의 기본 요소가 결핍돼 있다고 생각한다. 사유 재산의 개념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푸틴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 사라지기도 하고 더 많아지기도 한다.

경찰과 치안유지 장치가 있지만 이는 힘으로 사회안정이 유지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줄 뿐이다. 1991년 소련 붕괴에서 보았듯 치안을 강화하기 위한 시도는 정권의 합법성을 잃게 할 뿐이다.

푸틴 정권의 붕괴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푸틴 정권을 유지하는 게 덜 위험하다고 믿는다면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푸틴을 물러나게 하는 것만이 제도적 부패의 근원으로부터 러시아를 구출해낼 유일한 방법이다.

피온트코브스키 < 러시아 정치평론가 > / 정리=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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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안드레이 피온트코브스키 정치평론가가 ‘러시아의 봄은 시작됐다(The Russian Spring Has Begun)’란 제목으로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