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도전과 성취] 구본무 '절치부심'…'1등 LG' 재충전 끝났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올해 어느 해보다 긴 한 해를 보냈다. 줄곧 희망과 고난이 교차했다. ‘전기차 배터리의 지존이 되겠다’는 숙원은 가시권에 접어들었지만 ‘스마트폰 사업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과제는 내년에도 계속될 수밖에 없는 현재 진행형이다.

세계 최대 전기자동차용 2차전지 공장인 LG화학 오창1공장이 완공된 지난 4월6일. 구 회장의 머릿속엔 지난 20년간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구 회장이 2차전지를 처음 접한 건 1992년 영국 출장 길에서였다. 곧바로 샘플을 가져와 계열사인 럭키금속에 연구를 맡겼고, 5년 만인 1997년 소형전지 시험 생산에 성공했다.

하지만 글로벌 선두가 되기 위해선 일본과는 다른 뭔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일본 회사들이 많이 쓰는 니켈수소 전지 대신 가벼울 뿐 아니라 충전을 계속해도 전지 용량이 적게 줄어드는 리튬이온 전지에 승부를 걸었다.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양산은 늦어졌고 급기야 2005년 2차전지에서 2000억원의 적자를 보자 “사업을 접자”는 목소리가 팽배했다. 구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의 미래가 여기에 있다”며 직원들을 다독였다.

[2011 도전과 성취] 구본무 '절치부심'…'1등 LG' 재충전 끝났다
구 회장의 집념은 올해 결실을 맺었다. 배터리 주문량이 계속 늘면서 내년까지 국내외에 추가로 세 곳의 배터리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한발 더 나아가 지난 8월엔 미국 GM과 전기차 공동개발 협약까지 맺었다.

구 회장은 연말 인사를 통해 “자만하지 말고 계속 리드해 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다시 던졌다. 권영수 LG디스플레이 사장을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으로 전격 기용한 배경이다. 권 사장은 LCD(액정표시장치)를 세계 1위로 이끈 추진력이 강점이다.

구 회장은 권 사장을 불러 직접 “배터리 사업도 확실한 세계 1위로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LG화학이 전기차 배터리 등 대형 전지에서는 세계 1위지만 소형전지나 에너지저장시스템(ESS) 등에서는 압도적이지 않은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구 회장은 줄곧 “글로벌 1등의 기반은 부품소재 사업의 경쟁력에서 창출된다”고 강조했다. 미래 LG 경쟁력의 원천이 부품소재에 달렸다는 의미다. 구 회장이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독자적인 LCD 유리기판 생산을 밀어붙이고 있는 이유다.

LG는 유리기판 분야 진출을 위해 2009년 독일 쇼트사와 기술 이전 계약을 맺었고 지난 6월부터 LG화학 파주 공장에서 유리기판 시험 생산에 나섰다. LG는 내년 상반기 중 유리기판을 양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LG 유리기판 사업의 성패는 앞서 LCD 유리기판 상용화에 실패한 쇼트사 기술이 가진 결점을 얼마나 보완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주력기업 LG전자의 부활은 구 회장에게 남겨진 커다란 숙제다. LG전자는 유상증자를 통해 1조원 규모의 자금을 수혈받았지만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다.

LG전자는 올해 임직원 모두 독한 DNA로 재무장했고 신규 수혈자금을 스마트폰 연구·개발(R&D) 분야에 집중 투입해 재기할 계획이지만 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그룹 관계자는 “고통스러웠지만 올해 내내 재도약을 위한 기반을 다졌고 이제 LTE(롱텀에볼루션)폰 등으로 반전의 계기를 찾아가고 있는 만큼 내년 하반기께부터는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구 회장은 올 들어 여러 차례 위기감을 표출하며 그룹 전체에 긴장감을 불어넣기도 했다. 지난 7월 임원회의에선 “사업 전반을 재점검하라”고 강하게 주문했고 연말 계열사 사장단 인사에선 전례 없는 변화를 시도했다. 큰 잘못이 없는 한 수장을 바꾸지 않는 관례에서 벗어나 실적과 나이 등을 기준으로 4명의 최고경영자(CEO)를 전격 교체, 임직원들을 놀라게 했다.

LG 관계자는 “한때의 성공에 안주하거나 방심하면 시장에서 금방 도태된다는 교훈을 일깨워준 한 해였다”며 “그런 면에서 경영진이 변화와 혁신을 시도하는 데 많은 직원들이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1 도전과 성취] 구본무 '절치부심'…'1등 LG' 재충전 끝났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