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지식경제위원회가 법안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기업의 중소기업 고유업종 진출을 제한하는 ‘대·중소기업 상생법’ 개정안을 26일 통과시켜 논란이 일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업체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법안임에도 여야 의원들이 최종 법안이 없는 상태서 구두 보고만으로 법안을 처리한 것은 상식 밖이라는 지적이다.

통상 법안은 해당 상임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법 내용을 문안으로 완성한 뒤 전체회의에 상정, 표결하는 게 일반적이다. 다만 시급한 개정안의 경우 국회법상 여야가 핵심 내용에 대해 합의를 하면 일단 법안을 통과시킨 후 자구 수정을 거쳐 법안을 완성하는 게 가능하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지경위는 이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후속대책법안 등 20여건의 안건을 처리한 뒤 전격적으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안’ 개정안을 상정했다. 당초 예정에 없던 안건이었으나 민주통합당 소속 김영환 위원장은 “위원회의 동의가 필요한 긴급 안건이 있다”며 상생법 표결에 나섰다.

최종법안이 없는 상태에서 구두로 표결의사를 묻자 의원들은 절차적 문제점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며 표결연기를 주장했다. 무소속 최연희 의원은 “토씨 하나에 따라 법안의 의미가 달라지는데 법안도 없이 표결하면 시비가 일 수 있다”고 제동을 걸었다. 이에 김 위원장은 “한나라당이 지난 10월 법안소위에서 단독 처리해서 관련 법안이 전체회의에 와 있고 새로 합의한 내용에 대한 이견도 크지 않으니 자구 수정은 위원장에게 일임해달라"고 말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규제에 찬성하는 한나라당 의원들도 “법안을 보지도 않고 처리하는 것은 문제” 라고 했으나 김 위원장은 법안을 처리했다. 처리배경과 관련 김위원장은 "한나라당이 12월 임시국회 처리지연을 위해 법안심사소위도 열지 않는 등 사보타지 모습을 보여 불가피한 선택 이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법안 없는 법안’ 처리 후 여야 의원뿐 아니라 소관부처조차도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경위에는 노영민, 장제원, 김재균 의원 등이 발의한 3개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관련법이 계류 중이다. 이날 처리된 상생법 개정안은 지정분야, 사업이양의 강제성 여부, 진입제한 기간, 강제수단 등이 상이한 이들 안건을 혼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경태 민주통합당 의원이 구두로 상임위에 보고한 법안의 개요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분야에 제조업뿐 아니라 서비스를 포함시키고 △선정주체인 동반성장위를 법제화하고 △적합업종 미이행분야는 동반성장위가 사업조정토록 한다는 것 등이다. 아울러 대기업에 대한 사업이양 권고와 진입제한 설치, 이행명령과 벌칙 부여 등도 포함시켰다. 구체적인 내용과 자구에 따라 해당 업체들의 이해관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민감한 내용들이다.

국회 지경위 전문위원실과 지경부는 전체회의 후 뒤늦게 법안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를 놓고 회의를 연 것으로 알려졌다. 표결에 참석한 일부 의원은 “전체회의에 참석은 했지만 절차상 문제를 지적했다는 내용을 속기록에 남겨달라”고 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