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없다' 무시·치료비 거부·합의 종용·인격모독

교사와 교육당국의 무사안일주의가 학교폭력 사태를 내버려둬 피해 학생의 고통을 가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7일 국가인권위원회가 펴낸 최근 몇년 간 학교폭력 관련 상담사례를 보면 학교가 폭력을 알고도 방치하거나 사태 해결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피해 학생 측이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학교는 합의를 종용하거나 사안 덮기에만 급급해 학교폭력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는 경우는 적었다.

오히려 피해 학생 부모가 학교장으로부터 '가정교육을 잘못시켰다'는 등 인격침해 발언을 들었다며 인권위에 상담요청을 해온 사례도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생 딸을 둔 A씨는 2009년 어느날 밤 딸이 가슴통증과 호흡곤란 증세를 호소해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딸에게서 멍과 상처를 발견한 A씨는 딸이 2년간 상급생에게서 거의 매일같이 폭행당했다는 청천벽력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1차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서 학교 측은 '증거가 없다'며 폭행 사실을 무시했다.

이어진 2차 자치위원회에서 A씨는 소견서 등 증거를 제출한 끝에 강제전학 통보를 받았다.

딸이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와 정신발달지연 진단을 받았지만 학교로부터는 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

B씨는 자녀가 학교폭력 피해를 보자 담임교사에게 이의를 제기했고 담임으로부터 사실조사를 하겠다는 답변을 얻어냈다.

그러나 담임과 학생부장은 말을 바꿔 합의를 종용했고 교장은 만나주지조차 않았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중재로 가해 학생 측과는 합의했지만 피해 자녀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학교는 보호대책 없이 수수방관하기만 했다.

B씨가 인권위에 진정하자 학교는 그제야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학교 복귀 후 생활적응을 돕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C씨는 아들이 4명으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해 턱뼈가 부러져 학교를 찾아가자 학교장으로부터 '엄마를 보니 알겠다.

다른 학교로 가도 똑같을 것이다'라는 인격모독적인 말을 듣기도 했다.

경찰도 학교 측이 학교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뿐 아니라 알더라도 애써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선 경찰서 청소년 사건 담당자는 "경찰에 들어오는 학교폭력 사례는 학생끼리 돈을 뺏거나 때린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합의 차원에서 오는 일이 대부분"이라며 "학생들 사이에서 진짜로 일어나는 폭력은 학부모는 물론 교사도 모른다.

그리고 알아도 모른 척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p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