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다수는 운전자 부주의로 판결
사고 확인 방법 없어···"정부 차원 꼼꼼한 조사 필요"
올 초 르노삼성자동차 뉴SM5를 구매한 직장인 양모 씨(50·경기 부천 거주)는 지난달 전남 화순에서 주차 도중 급발진 사고를 당했다. 후진 주차를 하려고 기어 변속기를 'R(후진 방향)'로 조작한 순간 차가 굉음을 내면서 급발진해 전방의 건물 벽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인해 차의 범퍼, 본네트, 휀더 등 전면부가 파손됐다. 양씨의 차량은 다음날 르노삼성 양평사업소에 입고됐다. 양씨는 차량 입고 후 일주일 뒤 회사 측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점검 결과 제작 결함이 아닌 운전자의 과실이 인정돼 보험처리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결과에 수긍할 수 없던 그는 이달 9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고 13일 민원이 한국소비자원에 이첩돼 현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양씨는 "페달을 밟지 않은 상태에서 차가 앞으로 달려나갔고 충돌을 피하려고 브레이크를 밟아 노면에 스키드마크(바퀴 흔적) 자국이 드러난 사진을 전달했어도 르노삼성은 이를 무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운전자 생명을 안전하게 책임져야 할 제조사가 생명을 위협하는 급발진 사고를 놓고 고객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를 고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고 결과에 대한 르노삼성 측의 설명은 달랐다. 운전자가 후진 기어를 조작하면 차가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제조상 결함은 나올 수 없어 100% 운전자 과실이란 입장이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기어 위치를 'R(후진)'로 놓았으면 기술적 원리로는 차가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면서 "사고차 운전자가 기어 위치를 'D(출발)'로 놓은 것을 'R'로 조작한 것으로 혼동한 운전자 과실로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후진 기어 조작시 급발진이 발생할 수 있는 제조상 결함은 나올 수 없다는 분석이다. 다만 변속 과정에서 급발진을 경험한 일부 운전자 사례로 추정해 볼 때 변속 중 급발진 사고가 전무하진 않다는 의견이다.
김필수 대림대학 자동차학과 교수는 "요즘 자동차는 수동 기어보다 오토 기어가 많고 기계식 장치보단 전자제어 부품이 많이 들어가 전자파에 의한 전자장치의 오작동 등으로 인해 급발진 사고가 간혹 일어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급발진 사고는 사고가 날 당시 기록 영상이 남아 있지 않으면 대부분 소비자가 피해를 본다" 면서 "피해를 줄이려면 사고 장면을 확보할 수 있는 블랙박스를 장착하는 등 대처법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문제는 제조사가 급발진 사고가 일어나도 원인과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기치 않은 차량 급발진 사고로 인한 소비자 피해 사례를 줄이기 위해선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실정이다.
김종훈 한국소비자원 자동차 부문 조사위원은 "과거 급발진 관련 대법원 판결을 볼 때 자동차 결함에 의한 급발진 사고는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이 났다" 면서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사고의 불안 해소를 위해 정부 차원의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경닷컴 김정훈 기자 lenn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