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2012 종말론보다 두려운 것
1년도 채 안 남았다. 마야력(曆)이 예언했다는 지구 종말이. 마야력은 2012년 동짓날(12월21일)에서 멈춰 있다. 주역에서도 2012년 종말을 암시했다고 한다. 영화 ‘2012’의 장면도 눈에 선하다. 지레 쫄지는 마시라. 1990년대 휴거 소동도,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종말 예언도 해프닝이었을 뿐이니까.

최초의 종말 신앙은 조로아스터교다. 신(神) 아후라 마즈다가 예정한 심판일이 오면 구세주가 나타나 모든 영혼이 부활하고 악은 소멸된다고 봤다. 이는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와 미륵신앙에서 말하는 종말론의 원천이 됐다. 역사상 셀 수도 없는 사이비 종교와 예언가들이 성서를 멋대로 해석해 종말을 외쳐왔다. 심지어 아이작 뉴턴조차 구약 다니엘서를 토대로 지구 종말이 2060년 온다고 계산했을 정도다.

뉴턴도 예언한 종말론은 허구

현대의 종말론은 과학의 외피를 쓰고 다가왔다. 60년대 인구폭발과 세계 대기근론, 70년대 자원고갈론, 80년대 산성비, 90년대 세계적인 유행병 등이 그렇다. 예언이 실현된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인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었다. 물론 반성하는 사람도 없다. 2000년대 들어선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를 새로운 종말 신앙으로 대체했다. 지구를 구할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과장된 설교 덕에 늘어난 것은 각국의 신재생에너지 보조금이요, 태양광 공급과잉이다.

사람들이 종말론에 매료되는 이유는 인간 의식이 영생이란 개념보다는 세속의 기승전결 구조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란 게 미국 예언가 실비아 브라운의 지적이다. 시작과 끝을 궁금해 하듯 인과관계가 부정확하거나 치우친 정보만 입력될 때 사람은 쉽게 의심한다. 종말론과 음모론은 그렇게 단짝을 이룬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구글 검색어를 통해 뽑은 세계 10대 음모론에는 소설 《다빈치 코드》에도 등장한 예수 결혼설, 미국의 9·11테러 자작극설, 엘비스 생존설, 에이즈 개발·유포설 등이 있다.

생각과 대화의 단절은 비극

2012년을 나흘 앞둔 지금, 우리 사회에도 종말론과 음모론이 짝지어 대중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 세상이 갈수록 나빠지고 불평등이 극에 달했다는 선동에 늘 고단한 서민들은 솔깃해 있다. 취업전쟁을 겪는 젊은이들에겐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가짜 멘토들이 넘쳐난다. 이밥에 고깃국 못 먹기는 70년대 남북한이 매한가지였지만 지금 북한에서 끼니 염려할 때 남한에선 살 찔까 걱정한다. 연봉 높고 일도 편한 신이 내린 직장은 지금처럼 예전에도 바늘구멍이었음은 아무도 얘기 안 한다.

트위터의 미확인 루머를 믿는다는 트위터리안이 80%에 달하는 사회다. 광우병 괴담이 터무니 없음을 3년 만에 다 잊고, 맹장수술 1000만원이라는 FTA 괴담에 휩쓸린다. 새만금 갯벌과 천성산 도룡뇽이 멀쩡해도 ‘4대강 사업=환경재앙’이란 맹신은 요지부동이다. 모든 것이 가카(각하)의 꼼수라고 주입하면 그 어떤 팩트를 보여줘도 마이동풍이 된다. 이렇게까지 대화가 단절된 데는 물론 이 정권의 책임도 절반 이상이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의견을 주고받다 보면 극단적인 생각으로 치닫게 마련이다. 집단 간 물리적 격리보다 더 큰 문제는 반대 견해를 무조건 기각하게 만드는 심리적 격리다. 이른바 집단극단화 현상이다. 2012년 지구 종말보다 더 걱정스런 생각과 대화의 종말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