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R&D 정책 계속 주도하면 글로벌 제약사 100년 가도 안나와
대학과 과학기술출연연구소에서 쏟아지는 바이오기술 연구 성과는 사실 쥐 등 동물 실험 결과다. 이를 약으로 만들려면 전임상-임상을 거쳐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받아야 한다. 국내에서는 이 역할을 공공부문(안전성평가연구소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등)이 거의 도맡아 하고 있다. 민간 CRO(Clinical Research Organization)가 발빠르게 움직여 신약 개발과 연결하는 외국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출연연구소 선진화방안’에 안전성평가연구소 민영화 방침이 담긴 배경이다.

국내 CRO 리딩업체인 바이오톡스텍 강종구 대표는 “신약개발의 성패는 CRO에 달려 있으며 각국은 대부분 민간이 이를 주도하고 국가가 개입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말했다. 특히 제약업종 등의 경쟁이 격화되는 자유무역협정(FTA) 시대에서 이 같은 구조는 치명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김형태 아프로R&D 대표는 “독성 및 물성 시험, 신뢰성 분석 등에서 거대 민간 CRO의 실험 결과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인정받지만 국내에 한정된 공공기관은 그럴 수 없다”며 “공공에 치우친 바이오 연구ㆍ개발(R&D) 구조가 글로벌 제약사가 탄생하지 못하는 결정적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정부가 R&D 정책 계속 주도하면 글로벌 제약사 100년 가도 안나와
공공과 민간은 R&D의 출발선이 다르다. R&D서비스 업체 대표들은 공통적으로 간접비 인정비율을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간접비는 상품·서비스 생산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경영 활동에 소모되는 비용이다. 전기세 임대료 소모품경비 등 다양하다. 현행 규정상 이 비용은 직접비와 인건비 합계의 5%까지만 인정받는다. 최대 38%까지 되돌려받는 출연연구소 대학 등에 비해 현저히 불리한 조건이다.

이종포 앤스코 대표는 “R&D서비스업은 과제 수주액에서 직접비와 인건비를 떼면 남는 게 거의 없는 데 사실 자력으로 R&D를 하라는 얘기”라며 “동반성장 등 탁상공론은 하지 말고 이런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 초부터 간접비 인정비율을 17%선까지 인상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시스템반도체 등 차세대 산업을 위해서도 R&D서비스업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큐알티반도체 김영부 대표는 “첨단장비의 집약체로 성장하는 자동차는 반도체 등 부품의 신뢰성시험, 불량분석 등이 중요하지만 국내 인프라가 굉장히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팹리스(반도체설계전문) 업체들은 국내에서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지 못해 대만 등을 전전하느라 비용 부담이 컸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서비스 수요에 비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출연연구소 등과 달리 지원도 전무해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놨다.

공공과제 수행 후 정산시 따라야 하는 회계기준이 기업과 상이한 것도 문제다. 전인기 브이피코리아 대표는 “실제 기업 운영비를 사업비로 인정받지 못 하거나, 이익을 창출했음에도 국고보조금이 영업외수익으로 잡혀 신용평가에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연구 성과는 민간에 이전해야만 의미가 있는 만큼 회계 엇박자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정부가 R&D 정책 계속 주도하면 글로벌 제약사 100년 가도 안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