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김정은 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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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나치 독일을 이끌며 수백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지만 자신의 호칭에서만은 과장을 꺼렸던 모양이다. ‘퓨어러(fuhrer)’라고 불리기를 좋아했단다. 뜻은 그냥 ‘지도자’다.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어지럽힌 파시스트 무솔리니도 ‘두체(duce)’라는 호칭을 선호했다. 역시 지도자라는 의미다. 스스로를 낮춰 보여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였을까.
얼마 전 비참한 최후를 맞은 리비아의 카다피는 전혀 달랐다. ‘위대한 리비아 인민사회주의의 위대한 혁명 지도자’라는 거창한 직함을 갖고 있었다. 나중엔 ‘아프리카와 아랍의 통합을 주도하시는 왕중왕, 존경하는 위대한 지도자 각하’로 불려야 만족했다고 한다. 유엔총회에 참석해 몇시간씩 장광설을 늘어놓는 정신상태였으니 이상할 것도 없다.
‘검은 히틀러’란 별명의 이디 아민 우간다 전 대통령은 한술 더 떴다. ‘모든 생명의 탁월한 지도자이시며, 모든 지상동물과 바다 물고기들의 신이시며… 대영제국을 무찌른 정복자’. 한때 이 야릇한 호칭을 공식 문서 자신의 이름 앞에 붙이도록 했단다. 무자비하게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애완용 악어의 먹이로 주는가 하면 각료회의 중 장관의 뺨을 때리고 자신의 다리 밑으로 기어가게 하는 등 숱한 엽기 행각을 벌인 아민답다.
북한도 뒤지지 않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가 많이 쓰이지만 수식어가 보통 요란한 게 아니다. ‘국제공산주의운동과 노동운동의 탁월한 영도자이시며, 혁명의 영재이시며, 수천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우리 당과 인민의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 ‘사회주의 조국의 강성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나라의 통일과 세계의 자주화를 위하여 불철주야 정력적으로 활동하시던 우리의 위대한 김정일 동지…’
김정은도 이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동안 ‘샛별장군’ ‘청년대장’ 등으로 불렸으나 김정일 사후엔 ‘친애하는 김정은 동지’ ‘21세기의 태양’을 거쳐 ‘진정한 인민의 영도자, 친어버이’란 극존칭으로 상향조정됐다. 단숨에 ‘최고사령관’이란 지위도 얻었다. 김정일이 김일성 사후 몇 년이 지나서야 ‘친애하는 지도자’로 불렸던 것과 대비된다. 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이걸 점입가경이라고 해야하나. 아마 권력 장악과 정통성 구축이 그만큼 다급하기 때문일 게다. 이런 희한한 호칭이 과대망상을 불러 판단력을 흐리게 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얼마 전 비참한 최후를 맞은 리비아의 카다피는 전혀 달랐다. ‘위대한 리비아 인민사회주의의 위대한 혁명 지도자’라는 거창한 직함을 갖고 있었다. 나중엔 ‘아프리카와 아랍의 통합을 주도하시는 왕중왕, 존경하는 위대한 지도자 각하’로 불려야 만족했다고 한다. 유엔총회에 참석해 몇시간씩 장광설을 늘어놓는 정신상태였으니 이상할 것도 없다.
‘검은 히틀러’란 별명의 이디 아민 우간다 전 대통령은 한술 더 떴다. ‘모든 생명의 탁월한 지도자이시며, 모든 지상동물과 바다 물고기들의 신이시며… 대영제국을 무찌른 정복자’. 한때 이 야릇한 호칭을 공식 문서 자신의 이름 앞에 붙이도록 했단다. 무자비하게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애완용 악어의 먹이로 주는가 하면 각료회의 중 장관의 뺨을 때리고 자신의 다리 밑으로 기어가게 하는 등 숱한 엽기 행각을 벌인 아민답다.
북한도 뒤지지 않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가 많이 쓰이지만 수식어가 보통 요란한 게 아니다. ‘국제공산주의운동과 노동운동의 탁월한 영도자이시며, 혁명의 영재이시며, 수천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우리 당과 인민의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 ‘사회주의 조국의 강성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나라의 통일과 세계의 자주화를 위하여 불철주야 정력적으로 활동하시던 우리의 위대한 김정일 동지…’
김정은도 이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동안 ‘샛별장군’ ‘청년대장’ 등으로 불렸으나 김정일 사후엔 ‘친애하는 김정은 동지’ ‘21세기의 태양’을 거쳐 ‘진정한 인민의 영도자, 친어버이’란 극존칭으로 상향조정됐다. 단숨에 ‘최고사령관’이란 지위도 얻었다. 김정일이 김일성 사후 몇 년이 지나서야 ‘친애하는 지도자’로 불렸던 것과 대비된다. 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이걸 점입가경이라고 해야하나. 아마 권력 장악과 정통성 구축이 그만큼 다급하기 때문일 게다. 이런 희한한 호칭이 과대망상을 불러 판단력을 흐리게 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