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 26개국이 재정통합에 합의하고 유럽중앙은행(ECB)이 1% 금리로 시중은행에 3년간 무제한 대출을 해주는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을 가동했지만 유럽 재정위기 공포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이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의 신용등급 강등을 예고한데다 내년 1분기 이탈리아 스페인이 발행한 3100억 유로의 국채 만기가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등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럽 국가들과 은행, 기업 중에는 유로존 붕괴에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을 세우는 곳이 점점 늘고 있다. 유로존 붕괴는 시간문제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비상대책을 세우는 물밑작업이 분주하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국가는 영국이다. 영국의 온라인 신문 텔레그래프는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나라가 발생할 경우 영국으로 도피 자본이 몰려들어 파운드화 가치가 급등할 수도 있는 만큼 영국 재무부가 자본유입 통제를 포함한 비상대책을 강구중”이라고 보도했다. 영국 4대 은행의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 대한 대출이 무려 1700억파운드에 달하는 것도 골칫거리라고 전했다. 이 밖에도 영국 외무부와 국방부는 유로존 탈퇴국의 긴급 국경폐쇄 조치 등에 대비해 스페인 포르투갈 등 외국 거주 자국민들을 긴급 소개하는 조치까지도 준비중이라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부 은행들은 이탈리아 리라화나 그리스 드라크마화 등 과거 유럽 통화의 거래 시스템을 복구 할 수 있는지 여부를 관련 업체에 문의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글로벌 기업 중에는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 지점으로부터 현금을 일일 단위로 인출해가는 곳이 생겼을 정도다.

최근 유럽 금융시장은 그런대로 안정적인 모습이다. 유로화 가치는 하락세지만 급락하던 주가는 10월부터는 대체로 소강상태다. 당장 디폴트를 선언할 정도로 다급한 국가는 없다는 점에서 급한 불은 껐다는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수면 아래서는 이처럼 유로존 붕괴에 대비한 분주한 움직임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유로존 일각이 무너지면 우리경제에 주는 영향도 결코 적지 않다. 당국이나 업계의 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