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살 소년의 얼굴은 비장했다. 태양신인 아폴론으로 분장하고 무대에 올라 자기 자신을 우주의 중심인 태양으로 바라보도록 만든 왕. 어린 왕은 말 대신 발레로 강력하게 왕권신수설을 표출한 것이다. <밤의 발레Ballet de la Nuit>(1653)에 직접 출연한 프랑스 왕, 루이 14세(1638~1715)의 일화다. 그는 사람들이 기억하는 최초의 발레리노다. 그렇다면 발레사에 우리나라 발레리노는 언제쯤 등장했을까. 우리나라 발레 역사에서 그 시작점이 된 사람이자 대부로 불리는 이는 임성남(1929~2002)이다. 그는 1962년 국립무용단 단장으로, 이후 1972년 여기서 분리되어 나온 국립발레단의 초대 단장으로 30년간 무용계를 이끈 인물이다. 이 발레리노의 신화는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1호 발레리노는 임성남1946년 3월, 우리나라에서는 한국 발레 역사의 첫출발이라고 할 공연이 국제극장 무대에 올라갔다. 신춘 무용 발표회였다. 이 공연이 중요한 건 공연을 주도한 인물 3명이 한국 발레의 1세대를 이뤘기 때문이다. 주축이 된 인물은 한동인(1922~?), 정지수(?~?), 진수방(1921~1995). 이들을 주축으로 그해 10월에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발레단
“무대 위 카리스마와 섬세함을 지닌 발레리노” “최고의 파트너” 전민철과 2인무를 춰본 굴지의 발레리나들은 이렇게 입을 모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학생이던 전민철은 지난해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다양한 무대를 경험했다. 그리고 프로 무용수들과 여러 공연을 선보이며 화제를 몰고 다녔다. 이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전민철의 ‘시절 짝꿍들’이 있다.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였던 발레리나 김지영(47·현 경희대학교 무용학과 교수)은 지난해 여름 전민철과 ‘산책’을 공연했다. 유니버설발레단 솔리스트 이유림(28)은 같은 해 가을 <라 바야데르>로 전민철과 3시간가량 무대에 섰다. 눈에 보이는 신체적 조건이나 기량은 누구라도 알기 쉽다. 그런데 문득 한 계절을 연습실에서 보내며 함께 무대를 준비한 이들의 속마음은 어땠을지 궁금했다. 그들에게 ‘함께 춤춘 전민철’에 대해 물었다. 김지영과 이유림의 답변은 꽃망울이 터지기 직전 꽃눈을 대하듯 기대감과 애정이 넘쳤다. 김지영과 전민철은 지난해 장마철에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무려 26세. 김지영이 프로 무대에 데뷔하
184cm의 키에 쭉쭉 뻗은 팔과 다리, 작은 얼굴과 우아한 몸짓. 세계를 사로잡을 슈퍼 발레 루키가 탄생했다. 숨 쉬듯 발레하는 남자, ‘발레 아이돌’로 불리며 대한민국 발레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전민철(21)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임윤찬, 조성진에 이어 전민철 보유국으로 불릴 날도 머지 않았다.전민철은 세계적 명성의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에 6월 입단한다. 한국인 수석무용수 김기민이 입단한 지 10여 년이 흘렀지만 순혈주의가 강한 러시아 발레단에서 한국인을 비롯해 동양인 남자 무용수가 선발된 이력은 없었다. 그런데 전민철은 군무 단계도 아닌, 주역을 안정적으로 맡을 수 있는 ‘솔리스트’ 등급으로 입단이 결정됐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시절부터 완벽한 신체 조건과 기량으로 교내 유명 인사였다. 재학 중 마린스키 발레단으로 춤 영상을 보냈더니 바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오디션을 보러 오라고 했다. 결과는 합격. 만 스무 살이 되던 해 눈부신 글로벌 커리어가 시작된 것이다. 전민철은 열세 살 때 아버지가 “남자가 발레를 해서 잘되는 경우가 없지 않냐”고 하자 “그건 다른&n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