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 세법…기업 稅부담 늘었는데 세수 감소
내년부터 시행되는 세법 개정안이 국회 심의를 거치면서 누더기로 변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세법 개정안은 기업의 세금 부담을 낮춰 투자 확대를 유도한다는 취지였으나 이 같은 정책방향이 실종됐다. 선심성 세제지원책이 늘어나면서 세수는 오히려 줄어 건전재정을 지키겠다는 정부 의지도 무력화됐다.

2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의결한 세법 개정안에 따르면 법인세 최고세율 22%를 적용받는 기업은 정부가 요구한 과세표준 ‘500억원 초과’에서 ‘200억원 초과’로 대상이 확대됐다.

이에 따라 453개 중견기업(기획재정부 추산)들은 종전 최고세율을 그대로 적용받는다. 감세혜택을 중소기업에만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정치권 요구가 반영된 결과다. 법인세를 일괄적으로 낮춰 감세를 통해 경제성장을 유인하겠다는 정부의 입법 취지는 무너졌다.

일부에서는 야당이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예컨대 40%)을 강력하게 주장하자 한나라당이 이를 무마하기 위해 법인세를 양보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가업상속시 500억원 한도 내에서 100% 소득공제를 해주겠다는 정부안도 ‘300억원 한도에서 70%’까지 해주는 것으로 축소됐다. 일감몰아주기 과세는 여야 이견 없이 정부안대로 확정됐다.

정부의 감세기조가 후퇴했음에도 세수는 오히려 줄어 균형재정을 사수하겠다는 정부 의지도 실종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중견기업에 대한 감세혜택이 줄면서 세수가 2000억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지만 ‘박근혜 예산’으로 불리는 근로장려세제(EITC)가 확대되면서 ‘조세 지출’은 더 늘었다. 내년 세입 예산은 당초 정부안에서 1675억원 줄어든 224조5663억원으로 수정됐다.

문제는 이번 세법개정안 협의 과정에서 정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무기력증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정부 내에서조차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여야의 협의에 끌려가면서 무기력하게 법안 취지가 훼손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집권 4년차 정부’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여당인 한나라당이 청와대와 거리두기에 나서면서 정부의 협상력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며 “레임덕이 가속화되면 경제정책이 정치에 종속되는 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