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남의 눈보다 나만의 눈
어릴 때 시골 고향에 내려가면, 잘 모르는 동네 노인들을 길에서 마주칠 때가 있다. 그 분들은 보통 “네 이름이 뭐냐”고 묻지 않고 “너 뉘 집 아들이냐?”고 묻는다. 아버지의 함자를 말하면 “아무개 아들이구먼”하고 헛기침을 하면서 팔자걸음으로 지나간다. 내가 누구의 아들이라는 점 이외에는 궁금한 것도 없고, 친절한 인사를 주고받는 일도 없이, 근엄한 자세로 팔을 휘저으면서 지나가는 것이다.

오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요즈음 친구들이나 동창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직장에서 은퇴하고 있다. 모두들 노후에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있지만, 마음에 부담이 되는 것은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남에게 비쳐질까 하는 것이다. 그동안 직장에서는 이사, 부사장, 사장 등의 지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했지만, 이제 그것을 잃게 되면 나는 무엇일까, 남들에게 초라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남들이 무시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다.

우리는 대부분 출신학교, 고향, 사는 동네, 직업 등으로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든다. 새로 사람을 알게 되면 처음 질문도 대개 직업, 자녀, 결혼, 학교 등에 관한 것이다. 그런 것으로 사람을 일정한 틀로 분류하고, 그 분류에 맞는 전형적인 행동 패턴을 기대하고, 그 틀에서 벗어난 사람은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문제와는 다른 문제다.

고위 공직에 있는 친구가 한 말이다. 자기는 공직자 신분에서 벗어나면 몸에 착 달라붙는 가죽 옷을 입고 멋진 모터사이클을 타고 길거리를 달려봤으면 한다는 것이다. 왜 지금 그렇게 하면 안 될까? 우리나라에서는 잘나고 훌륭한 사람들이 왜 자기의 개성을 따라 다양하게 살지 못하는지, 자신감을 가져도 될 지도층 인사들부터 왜 전형적인 삶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안타깝다. 심지어 청렴 결백하게 평생을 살아온 훌륭한 고위 공무원도 은퇴 후의 ‘검소’한 삶을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여기지 못하는 경우를 볼 때는 더욱 아쉽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외모나 고정관념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각자의 개성과 창의성을 훨씬 중요하게 보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임기를 마친 대통령, 물러난 장관, 현역을 마친 사업가, 잘 알려진 부호들이 검소한 집에 살기도 하고, 청바지 바람으로 길거리에 다니기도 하고, 자기 손으로 직접 운전하고 다니고, 그것이 전혀 사람들의 관심거리도 아니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 젊은이들은 부모가 사준 집에 살거나 부모의 도움으로 산 고급차를 타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창피한 일로 여기는 사회, 모두가 남의 눈에 좌우되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다양하게 사는 사회,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의 개성을 존중하는 그런 성숙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윤용석 <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 ysy@leek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