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 별세…고문기술자 이근안 씨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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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운동위 대부'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30일 별세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를 고문했던 '고문기술자' 이근안 씨(73)도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다.
김 상임고문은 수년째 파킨슨병을 앓아온 데 이어 지난달 29일 뇌정맥혈전증으로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2차 합병증이 겹치면서 패혈증으로 한달만에 숨을 거뒀다.
그는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으로 수배와 투옥을 반복했으며, 민주정부 수립 이후에는 재야 출신 정치인 그룹의 좌장으로서 잠재적 대권주자로 분류되기도 했으나 꿈을 이루진 못했다.
서울대 재학중이던 71년 서울대 내란음모사건으로 수배받은 것을 시작으로 재야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그는 민청련 사건ㆍ전민련 활동 등으로 수배와 투옥을 되풀이했다.
특히 군사정권 시절인 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기술자'로 불린 이근안 씨에게 무려 10차례의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받는 등 혹독한 고초를 겪었다.
그가 투병한 파킨슨병은 고문 후유증에 따른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씨는 1970년대부터 1988년까지 속칭 '고문기술자'로 악명이 높았다. 1988년 당시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을 고문한 혐의로 수배를 받다 10년11개월에 걸친 도피생활 끝에 1999년 전격 자수, 징역 7년형을 언도 받고 복역한 뒤 2006년 11월에 출소했다. 이후 2008년 목사안수를 받고 목회자로 거듭났다
김 상임고문은 2005년 교도소에 있는 이씨를 찾아가 역사적 용서를 했다.
하지만 이씨는 2010년 2월 '일요서울' 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고문기술자가 아니다. 굳이 기술자라는 호칭을 붙여야 한다면 심문기술자가 맞을 것 같다"며 전기고문 등 고문수사 행위를 전면 부인해 논란을 일으켰다.
한경닷컴 속보팀 news@hankyung.com
김 상임고문은 수년째 파킨슨병을 앓아온 데 이어 지난달 29일 뇌정맥혈전증으로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2차 합병증이 겹치면서 패혈증으로 한달만에 숨을 거뒀다.
그는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으로 수배와 투옥을 반복했으며, 민주정부 수립 이후에는 재야 출신 정치인 그룹의 좌장으로서 잠재적 대권주자로 분류되기도 했으나 꿈을 이루진 못했다.
서울대 재학중이던 71년 서울대 내란음모사건으로 수배받은 것을 시작으로 재야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그는 민청련 사건ㆍ전민련 활동 등으로 수배와 투옥을 되풀이했다.
특히 군사정권 시절인 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기술자'로 불린 이근안 씨에게 무려 10차례의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받는 등 혹독한 고초를 겪었다.
그가 투병한 파킨슨병은 고문 후유증에 따른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씨는 1970년대부터 1988년까지 속칭 '고문기술자'로 악명이 높았다. 1988년 당시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을 고문한 혐의로 수배를 받다 10년11개월에 걸친 도피생활 끝에 1999년 전격 자수, 징역 7년형을 언도 받고 복역한 뒤 2006년 11월에 출소했다. 이후 2008년 목사안수를 받고 목회자로 거듭났다
김 상임고문은 2005년 교도소에 있는 이씨를 찾아가 역사적 용서를 했다.
하지만 이씨는 2010년 2월 '일요서울' 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고문기술자가 아니다. 굳이 기술자라는 호칭을 붙여야 한다면 심문기술자가 맞을 것 같다"며 전기고문 등 고문수사 행위를 전면 부인해 논란을 일으켰다.
한경닷컴 속보팀 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