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박현주 회장의 사과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공개 사과’를 했다. 1월2일 발행된 신문 광고를 통해서다. “지난해 결과적으로 만족할 만한 수익을 드리지 못해 아쉽고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게 골자다.

박 회장은 외환위기가 낳은 기린아다. ‘박현주 펀드’를 앞세워 펀드 신드롬을 몰고 왔다. 자신도 2조원이 넘는 재산을 모으며 한국의 여섯 번째 부자로 우뚝 섰다. 고비도 많았다. ‘2호 박현주 펀드’(1999년)와 ‘인사이트펀드’(2007년)의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며 곤욕을 치렀다. 그때마다 “투자는 자기 책임”이라는 뚝심을 보였던 박 회장이 포괄적 사과(본인은 부인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느껴졌다)를 했다. 사건이라면 사건이다.

그의 사과는 절박감에서 비롯됐다. 작년 한 해 동안 미래에셋 주식형 펀드가 10조원 넘게 줄었다. 전체 주식형펀드 감소액(15조여원)의 3분의 2다.주식형펀드(액티브일반)의 연간 수익률도 마이너스 16.11%로 곤두박질쳤다. 48개 자산운용사 중 43위다. 자칫하면 존립에 문제가 생길 상황이다.

묵묵부답 증권사 CEO들

증권업계에서 사과할 사람은 비단 박 회장만이 아니다. 증권사 최고경영자(CEO) 대부분이 대상이다. 12개 증권사 CEO들은 작년 주식워런트증권(ELW) 거래와 관련해 검찰에 기소됐다. 7명이 1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았지만, 빌미를 제공한 것은 증권사였다. 이 과정에서 신인도는 추락했고 막대한 변호사 비용을 지출해야 했다. LIG건설 기업어음(CP)과 성원건설 전환사채(CB)를 팔았다가 배상판결을 받기도 했다.

투자자들이 등을 돌리면서 증권업종지수는 작년 한 해 동안 44.8% 폭락했다. 코스피지수 하락률(10.9%)의 네 배에 이른다. 주주와 종업원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점에서 증권사 CEO 모두가 사과해야 할 장본인이다.

문제는 사과할 일이 올해 더 많을 것 같다는 점이다. 유럽위기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주가가 올라야 돈을 버는 ‘천수답 경영’을 고수하는 증권사들로선 녹록지 않은 환경이다. 투자자 보호장치는 더 엄격해졌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에선 각종 수수료를 내리라고 윽박지른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지만 거대 투자은행(IB) 앞에서 아직은 ‘고양이 앞에 쥐’ 신세다.

표에 눈먼 정치권

물론 증권사 CEO들만 문제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정치권과 비교하면 그래도 양반이다. 선거의 해를 맞아 정치권은 거의 이성을 잃은 모습이다. ‘세율은 낮게, 세원은 넓게’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의 여당이 앞장서 소득세 최고 세율을 신설했다. 0~2세 무상보육과 취업수당 등도 뚝딱하고 만들어냈다. 한번 더 선거를 치를 경우 ‘태어날 때부터 대학 때까지 무상교육, 취업 때까지는 취업수당, 퇴직후엔 노령연금’ 등 꿈같은 복지국가가 만들어질 것 같은 분위기다.

올해는 60년 만에 돌아온 흑룡의 해다. 힘찬 비상의 해지만, 변화도 많은 해가 임진년 (壬辰年)이다. 420년 전 임진왜란에 빗대 ‘임진내란’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자조까지 나올 정도로 뭔가 불안한 게 요즘이다.

박현주 회장은 “새해엔 전략적으로 대처하고 지혜롭게 투자하겠다”고 다짐했다. 정말 전략적으로 생각하고 지혜롭게 행동하고 있는 것인지, 나라를 생각한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한번쯤 새겨봐야 할 임진년 정초(正初)다.

하영춘 증권부장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