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필로 쓴 유명 시인들의 예술혼
우리 시단의 대표 시인들이 손으로 직접 써서 만든 시집이 나왔다.지식을만드는지식은 원로·중진 시인 43명의 시집과 각 시집의 표제시를 한 권에 묶은 《시인이 시를 쓰다》 등 44권으로 된 육필시집 시리즈를 펴냈다.

시인들은 자신의 대표시를 한 자 한 자 정성껏 옮겼다. 어떤 시인은 만년필로, 어떤 시인은 볼펜으로, 붓으로, 연필로 눌러 썼다. 시에 그림을 그려넣기도 했다.

육필시집에 수록된 시는 모두 2105편. 정현종 시인은 시집 《환합니다》에 ‘섬’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등 60여편의 시를 담았다. 신경림 시인은 시집 《목계장터》에 ‘가난한 사랑 노래’ ‘농무’ 등 대표작을 골라 넣었다. 고인이 된 김춘수 김영태 정공채 박명용 시인의 육필시도 만날 수 있다. 김춘수 시인이 쓴 ‘꽃’에서는 정갈함과 섬세함이 묻어나며 무용평론가이자 화가이기도 했던 김영태 시인이 춤추는 듯한 필체로 쓴 ‘과꽃’에서는 시인의 자유로운 예술혼이 느껴진다.

시인들의 필체는 또박또박한 글씨, 삐뚤빼뚤한 글씨, 기러기가 날아가듯 흘린 글씨, 동글동글한 글씨, 길쭉길쭉한 글씨, 깨알 같은 글씨 등 각양각색이다.

시인들은 시집 머리에 육필시집을 출간하는 소회도 밝혔다. 이성부 시인은 “오래 전에 발표했던 시들을 백지 위에 새로 베껴 써보는 느낌이 새롭다”며 “십대, 이십대 시절 좋아하는 시를 깨알 같은 글씨로 써서 누구에겐가 편지로 부치던 일이 떠오른다”고 했다. 이생진 시인은 “붓만 가지고 몇 백년 써오던 글을 불과 70년 사이에 붓에서 연필로, 연필에서 볼펜으로, 그러다가 워드까지. 이제 컴퓨터 없이는 시를 쓰지 못한다”며 “그렇게 변해버린 세월인데 그 속에서 나는 얼마나 변했을까 하는 호기심이 나를 자극한다”고 말했다.

나태주 시인은 “육필시집은 한 시인에 대한 철저한 기념물”이라고 했고, 윤후명 시인은 “이 시집은 단순히 ‘육필’의 단계를 떠나 내 세 번째 시집으로 기록되어도 무방하리라”고 적었다. 이밖에 강은교 정진규 황학주 백무산 오탁번 마광수 정일근 천양희 조정권 최영철 시인 등의 육필시집이 시리즈에 포함됐다. 각권 1만5000원(표제시집 1만2000원).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