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마라톤 못하는 5년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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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50년 전인 1962년 1월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발표됐고, 2·3·4차로 이어졌다. 제5차부터는 이름을 바꾼 경제사회발전5개년계획이 추진됐다. 1993년 김영삼 정부는 제7차 경제사회발전5개년계획(1992~96)을 신경제5개년계획(1993~97)으로 수정했다. 그 뒤 외환위기가 발생했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경제 전체 5개년계획은 없어졌다. 하지만 분야별 5개년계획은 여전히 쏟아져 나왔다. 노무현 정부도, 이명박 정부도 그랬다. 법이 하나 제정될 때마다 5개년계획이 튀어나왔다. 기획재정부가 서비스 육성법을 만들고 5개년계획을 수립한다는 것도 그런 관성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5개년계획들은 성공적인가. 5년 단위 경제계획의 원조는 구소련 등 계획경제 국가들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들은 철저히 실패했다. 반면 한국의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개도국들이 유일한 성공모델로 꼽는다. 1,2,3,4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계획경제가 아니라 연속성을 갖는 20년의 비전이나 다름없었다. 1970년 한국 과학기술의 요람 KIST가 작성한 ‘서기 2000년의 한국에 관한 조사연구’가 이를 증명한다. 장기 비전은 수출전략, 기업가정신, 과학기술, 시장경제로 달성됐고, 그 토대 위에 지금의 우리 경제가 일어섰다는 평가다.
장기비전 없는 단기계획만 양산
그 후 5개년계획들은 연속성보다 차별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김영삼 정부가 5개년을 정권에 맞춰 수정한 것도 그 맥락이었다. 5개년은 곧 정권의 계획이 됐다.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 계획은 일단 부정하고 보는 게 불문율처럼 굳어졌다. 그러나 실상은 3년이라도 가면 다행이었다. 처음에는 새로 만든다고 법석을 떨다 시간 다 보내고, 정권 말로 가면 바로 유명무실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정권마다 3년 단기 승부를 하고, 반대하는 쪽은 3년만 버티면 되는 그런 계획이 되고 말았다.
새해가 되자 50년 비전을 짜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진다. 하지만 정작 50년 비전에 걸맞은 고민은 안 보인다. 지난 50년이 ‘성장시대’였다면 향후 50년은 ‘통합시대’로 가자는 정치성 짙은 구호에서부터, ‘공존 자본주의’로 가자는 정체불명의 얘기까지 나온다. 다음 정권 5년을 위한 레토릭으로 50년 비전을 이용해 먹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런 비전은 정권이 바뀌면 바로 날아간다. 노무현 정부 ‘비전 2030’이 그 케이스다. 이명박 정부도 2008년 ‘저탄소 녹색성장’을 60년 비전으로 내세웠지만 다음 정권이 계승할 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이게 우리 정치 현실이다.
국회에 미래상임위를 만들라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촛불시위 등으로 곤경에 빠졌을 때 뉴스위크지는 ‘단임제의 덫’이라는 글을 실었다. 한국의 국가 통치는 ‘마라톤’이 아닌 ‘단거리 경주’라고 했다. 우리가 언제까지 단거리 경주로 버틸지 걱정이다. 세계경제 재편, 동북아 질서 변화, 북한 변수 등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마라톤이 필요한 과제들이지만 정권을 초월해 우리 사회가 공유할 수 있는 장기 비전이 없으면 어렵다.
5년의 굴레를 벗어날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다. 구소련 붕괴로 위기를 겪었던 핀란드는 1993년 국회에 미래상임위원회를 구성했다. 누가 집권하든 15년 후 국가미래전략을 제시, 국회가 이를 검토하도록 아예 법으로 정했다. 우선 다가오는 총선에서 사람을 제대로 뽑아 이런 국회부터 만드는 건 어떤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그렇다면 5개년계획들은 성공적인가. 5년 단위 경제계획의 원조는 구소련 등 계획경제 국가들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들은 철저히 실패했다. 반면 한국의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개도국들이 유일한 성공모델로 꼽는다. 1,2,3,4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계획경제가 아니라 연속성을 갖는 20년의 비전이나 다름없었다. 1970년 한국 과학기술의 요람 KIST가 작성한 ‘서기 2000년의 한국에 관한 조사연구’가 이를 증명한다. 장기 비전은 수출전략, 기업가정신, 과학기술, 시장경제로 달성됐고, 그 토대 위에 지금의 우리 경제가 일어섰다는 평가다.
장기비전 없는 단기계획만 양산
그 후 5개년계획들은 연속성보다 차별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김영삼 정부가 5개년을 정권에 맞춰 수정한 것도 그 맥락이었다. 5개년은 곧 정권의 계획이 됐다.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 계획은 일단 부정하고 보는 게 불문율처럼 굳어졌다. 그러나 실상은 3년이라도 가면 다행이었다. 처음에는 새로 만든다고 법석을 떨다 시간 다 보내고, 정권 말로 가면 바로 유명무실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정권마다 3년 단기 승부를 하고, 반대하는 쪽은 3년만 버티면 되는 그런 계획이 되고 말았다.
새해가 되자 50년 비전을 짜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진다. 하지만 정작 50년 비전에 걸맞은 고민은 안 보인다. 지난 50년이 ‘성장시대’였다면 향후 50년은 ‘통합시대’로 가자는 정치성 짙은 구호에서부터, ‘공존 자본주의’로 가자는 정체불명의 얘기까지 나온다. 다음 정권 5년을 위한 레토릭으로 50년 비전을 이용해 먹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런 비전은 정권이 바뀌면 바로 날아간다. 노무현 정부 ‘비전 2030’이 그 케이스다. 이명박 정부도 2008년 ‘저탄소 녹색성장’을 60년 비전으로 내세웠지만 다음 정권이 계승할 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이게 우리 정치 현실이다.
국회에 미래상임위를 만들라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촛불시위 등으로 곤경에 빠졌을 때 뉴스위크지는 ‘단임제의 덫’이라는 글을 실었다. 한국의 국가 통치는 ‘마라톤’이 아닌 ‘단거리 경주’라고 했다. 우리가 언제까지 단거리 경주로 버틸지 걱정이다. 세계경제 재편, 동북아 질서 변화, 북한 변수 등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마라톤이 필요한 과제들이지만 정권을 초월해 우리 사회가 공유할 수 있는 장기 비전이 없으면 어렵다.
5년의 굴레를 벗어날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다. 구소련 붕괴로 위기를 겪었던 핀란드는 1993년 국회에 미래상임위원회를 구성했다. 누가 집권하든 15년 후 국가미래전략을 제시, 국회가 이를 검토하도록 아예 법으로 정했다. 우선 다가오는 총선에서 사람을 제대로 뽑아 이런 국회부터 만드는 건 어떤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