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칼럼] 의료계의 또 하나의 숙제, 친환경적 의료제품
지구온난화와 자원고갈 등 환경문제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게 되면서 산업개발에서 환경 이슈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로 떠올랐다. 기업에서는 녹색경영을 적극 추진하며 제품 환경 관리부서를 새롭게 전면배치하거나 전문단체와의 협력 또는 아웃소싱을 강화하고 있다. 친환경제품 관리의 비중을 높여 나가고 있는 것이다. 친환경에 대한 요구는 이를 반영한 ‘에코 디자인’ 제품의 증가와도 맥을 같이 한다.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의료계도 예외는 아니다. 그동안 의료 관련시설들은 환자 진료와 관리의 특수성을 감안, 에너지 관리에 대한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하지만 최근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에너지 관리의 효율화를 통한 연료비 절감을 목적으로 한 친환경 서비스들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병원의 친환경 서비스는 연료절감을 통한 에너지 활용은 물론 의료폐기물 처리, 쾌적한 진료환경 개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가속도가 붙고 있다.

하지만 일선 의료현장에서 직접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약제와 의료 소모품 등 의료 관련제품들은 아직까지도 친환경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미미하다.

일례로 내분비내과의 경우 만성질환인 당뇨병 환자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당뇨병 환자들은 일반적으로 먹는 제형의 경구용 제품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또 질환의 정도와 기간, 선천적인 췌장 기능 등에 따라 많은 환자들이 인슐린 주사를 처방받고 있다. 인슐린 주사는 사용이 편리하고 휴대가 간편하지만 사용 후 버려져 재활용이 불가능한 일회용 제품이다.

필자가 맡고 있는 환자 중에는 췌장 내 베타세포의 파괴로 인슐린 분비가 되지 않아 어릴 때부터 수년간 인슐린 주사를 맞고 있는 제1형 당뇨병 환자가 있다. 얼마전 대학생인 그 환자는 집과 학교에서 자신이 사용 후 버리는 인슐린 주사가 몇주만 지나도 휴지통에 수북이 쌓이게 된다고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수없이 많은 당뇨병 환자들이 모두 인슐린을 버린다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될 것 같으냐는 다소 ‘당혹스런(?)’ 질문이었다. 젊은 환자의 호기심에 필자는 아무런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최근 녹색성장과 친환경에 다소 경직돼있던 의료업계에서도 친환경 수요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환경을 고려한 새로운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기는 하다. 특히 질병의 특성 상 주사의 빈도가 높은 당뇨병 치료제는 치료제가 직접 담긴 카트리지만을 교체해 반영구적인 사용이 가능한 새로운 디바이스도 선보였다.

이 제품은 1회 사용 후 주사기 전체가 폐기물이 되는 기존 인슐린펜과는 달리 의료 폐기물의 양이 매우 적다. 친환경적인 트랜드를 반영하기 시작한 사례다. 당뇨병 환자들이 상황에 따라 장기간 또는 평생동안 인슐린을 맞아야 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매우 효과적인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환자의 감염과 위생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인 의료 현장에서 한 번 사용 후 폐기되는 일회용 제품은 여전히 적지 않은 분량이다. 하지만 근본적이고 장기적으로 친환경 의료제품에 대한 고민은 결코 멈춰서는 안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수많은 질병과 이로 인한 고통들이 우리 스스로 만든 환경파괴에서 기인한 것임은 명백하다. 환자 치료와 환경보호 모두를 고려한 친환경적 제품의 개발과 이에 대한 홍보가 절실한 시점이다.

차봉수 <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