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03년 SK글로벌 ‘1조5000억원대 분식회계’ 사건 이후 9년 만에 다시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됐다. 구속 상태였던 당시와는 달리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는다는 점이 다르다.

검찰은 5일 최 회장을 불구속 기소한 이유에 대해 “범죄 행위의 분담 내용과 SK그룹의 경제적 활동에 대한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의 신병까지 확보할 경우 재계 서열 3위인 SK그룹 경영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결과다. 최 회장의 유·무죄와 이와 관련한 신병처리 문제는 법원으로 넘어갔다.

검찰에 따르면 최 회장 형제의 범행 동기는 선물·옵션 투자자금 마련이었다. 최 회장과 최 부회장은 1998년과 2003년 무렵 각자 지인을 통해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50)을 소개받아 그를 통해 투자에 나서게 됐다. 2008년 5월까지 급여와 부동산 처분대금, 주식매도대금 등을 그에게 맡겨 투자를 하게 했다 큰 손실을 봤다.

최 회장 형제는 제1금융권으로부터 돈을 조달하기가 여의치 않게 되자 2008년10월 SK텔레콤과 SK C&C 자금 497억원을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지급한 후 창업자대여금 명목으로 중소기업에 송금하는 것처럼 꾸며 옵션·선물투자에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 달여 후에는 SK가스와 SK E&S, 부산도시가스 등 3개 계열사에서 선출자금 명목의 495억원으로 횡령액을 메워 이 역시 횡령액에 포함됐다. 또 계열사 자금 750억원을 저축은행에 개인대출 담보 제공 방식으로 횡령하고 주요 계열사 임원들에게 보너스 형식으로 자금을 지급한 후 이를 되돌려받아 139억원 상당을 착복한 혐의도 있다.

저축은행 대출을 모색하다 현금유동성 부족으로 예금담보를 요구받게 되자 이미 조성된 베넥스인베스트먼트 출자금을 저축은행에 예금한 후 이를 담보로 대출받는 방식이었다.

최 부회장은 2010년 5월 선물옵션 투자금 180억원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김준홍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47)를 통해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비싸게 팔아 201억원의 재산상 이익을 취한 혐의(배임)도 받고 있다. 김 대표로 하여금 SK 계열사 자금으로 조성된 투자조합의 출자금으로 최 부회장 자신이 주주로 있던 회사의 주식 6590주를 적정가 29억원 상당보다 201억원가량 많은 230억원 상당에 구입토록 한 혐의다.

검찰은 SK홀딩스 장모 전무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SK 계열사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삭제, 은닉해 증거인멸한 혐의로 SK텔레콤 팀장 등 4명에 대해서는 약식 기소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