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일 아이코닉스 대표 "뽀로로가 '3등신'이었다면…과연 대박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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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과 맛있는 만남
4형제 중 셋째…제가 딸노릇했죠
아이들 노는 것 보며 작품 구상
술·담배 안즐기고 그림 취미
올빼미형…새벽 1~2시 퇴근
돈 제법 벌었지만 챙기지 못해…뽀로로 갈길 아직 멀거든요
4형제 중 셋째…제가 딸노릇했죠
아이들 노는 것 보며 작품 구상
술·담배 안즐기고 그림 취미
올빼미형…새벽 1~2시 퇴근
돈 제법 벌었지만 챙기지 못해…뽀로로 갈길 아직 멀거든요
우연한 성공이 가능할까.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집념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뿐. ‘뽀로로 신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에게 영향력이 크다해서 ‘뽀통령’, 신적인 존재라 해서 ‘뽀느님’으로 불리는 국민 캐릭터. 전 세계 120개국에 수출된 한국의 간판 창작 애니메이션. 각국 도서와 완구, 장난감, 의류, 게임, 생활용품 등 1600개 용품에 붙어 로열티로 연간 120억원을 벌어들이는 효자 상품. 유니세프 홍보대사로 활약하며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평화의 아이콘.
브랜드 가치만 3890억원(2009년 기준)에 달하는 뽀로로 탄생 뒤에는 어떤 성공의 연금술이 숨어 있을까.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고 있던 지난 5일, 분당의 한정식 집 ‘고가(古家)’에서 뽀로로 탄생의 주역인 최종일 아이코닉스 대표(47)를 만났다. 깔끔한 외모의 최 대표는 서정적이고 차분한 캐릭터의 소유자였다.
식당 얘기부터 꺼냈다. “왜 이렇게 고풍스런 기와집 식당을 골랐습니까.” 향교(鄕校) 같은 분위기의 전통 한정식집이 뽀로로 캐릭터와는 잘 어울리지 않아서다.
답은 심플했다. “여기 다닌 지 5년쯤 됐어요. 이 식당에선 인공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아요”. 아하! 인공 조미료 없는 단백한 음식 선호→순수한 이미지 창작→뽀로로 탄생→유아시장에서 대성공? 뭔가 얘기가 잘 풀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식당에 관해 얘기를 더 나누고 있자니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코스대로 나오는 음식을 한꺼번에 내달라고 주문했다. 궁중 떡갈비에 간장 게장, 세발낙지 구이 등 메인음식이 정갈스런 밑반찬과 함께 한상 가득 올라왔다.
최 대표가 먼저 뭘 먼저 집는지 지켜봤다. 고기 대신 돗나물을 집었다. 그는 “고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라며 나물을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씹기 시작했다.
갑자기 뽀로로 탄생 과정보다 그의 집안 내력이 궁금해졌다. 이 집의 자랑이라는 궁중 떡갈비를 한입 배어 물며 물었다. 육즙이 진하게 배어나왔다.
▶혹시 남자 형제만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알았죠. 저는 4형제 중 셋째입니다.”
▶형제가 많은 집에서는 누군가는 딸 역할을 하게 되죠. 혹 최 대표님이 그 역할을 하지 않았나요.
“이런. 그래요. 아들만 있는 집은 어머니가 고생하는 법인데 제가 엄마의 말 벗이 됐지요. 형들은 무뚝뚝하고 밖으로 도는 편이었죠. 엄마 고민을 들어주고 얘기를 나누는 게 제 일이었어요.”
그는 대추를 찹쌀가루와 더덕가루에 버무려 튀긴 대추튀김을 집어 들었다.
▶학창시절에 그림을 그렸다면서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그림을 그렸어요. 그러다 문뜩 그림으로 성공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포기하고 신문방송학과를 선택했지요.”(그는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85학번이다)
▶술 담배 골프 이런 거는 어떤가요.
“술은 시간에 쫓기다보니 외부에서는 마실 기회가 많지 않고, 그러다 보니 밖에서보다는 집에서 가끔 마시는 편입니다. 다른 거는 안해요. 노래방요? 전혀. 하하.”
술 담배 안 즐기고, 어머니를 배려하는 섬세한 감성에, 그림까지? 얘기가 점점 술술 잘 풀려 나간다고 생각했다. 대학 시절 뽀로로의 창작과 성공으로 이어지는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웬걸? 의외로 학창시절은 평범했다고 한다. 그는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고 봐야죠”라고 웃었다. 인터뷰 후 만난 그의 대학 동창생도 “종일이는 전혀 튀지 않았어요. 저렇게 유명해지리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 했죠. 그럴 줄 알았으면 좀 친하게 지냈을텐데…”라며 깔깔 웃었을 정도다.
최 대표는 “졸업한 후 1991년에 금강기획에 입사해 신사업팀을 맡았는 데 그 때서야 애니메이션 사업과 인연을 맺게 됐어요. 그렇게 금강기획에서 만 10년을 근무하고 난 후 독립해서 다시 10년 동안 사업을 한 거죠. 독립할 때만해도 뽀로로가 이렇게 성공할 줄 몰랐어요. 그냥 열심히 매달렸죠. 운이 좋았어요”라며 겸손해 했다.
연간 345억원을 벌어들이는 중견기업 대표답지 않다. 좀처럼 속 시원한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성공이 겸손만으로 이뤄질 수 있다면 세상엔 수백만명의 뽀로로 아빠가 있을 터. 그에겐 특별한 뭔가가 있어야 했다. 공격적 질문이 필요했다.
눈치를 챘을까. 최 대표는 “이 집은 간장게장이 최고”라며 뚜껑에 밥을 비벼 먹으라고 기자에게 권했다. 정확한 타이밍이다. 그래, 분명 그에게는 뭔가가 있다. 그도 게다리 한 쪽을 집어 조용히 씹었다.
▶본인이 사업가 체질이라고 생각합니까.
“사실 비즈니스보다는 콘텐츠 창작 쪽이 더 좋아요. 지금도 일과의 반은 시나리오를 써요. 올빼미 형이라서 저녁에 주로 글을 쓰지요. 퇴근시간은 한 새벽 1~2시?”
그는 “아이디어요? 중학교 2학년인 아들 현준이와 초등학교 5학년된 딸 유선이가 주말에 노는 모습을 가만히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어요. 그래도 안되면 ‘하늘을 나르는 교실’ 등 그런 류의 아이들 책을 읽죠”라며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까칠한 질문에도 그냥 물러서 버린다. 그렇다고 이쪽에서도 물러설 순 없다.
▶세심하고 배려있는 건 좋은데 주변 사람들 얘기에 휘둘리는 편은 아닌가요.
최 대표도 그 대목에선 양보할 수 없는 모양이다. 슬슬 얘기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하하. 제가 고집은 좀 쎈 편이죠. 원칙을 정하고 맞다 싶으면 그냥 밀어붙입니다. 뽀로로 만들 때를 예를 들어 볼까요. 동료들이 왜 하필이면 ‘펭귄’이냐고 반대했죠. 강아지 고양이 판다 토끼 다 있는데 왜 하필 펭귄이냐. 저는 다른 거는 너무 잘 나가는 캐릭터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유럽에 펭귄 캐릭터로 ‘핑구’가 있었는 데 그 정도면 극복할 수 있다고 본 거죠.”
그는 이 대목에서 처음으로 떡갈비를 집어 들었다.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캐릭터를 제작할 때도 저는 처음부터 2등신 캐릭터를 고집했어요. 유아·어린이에게 먹히려면 머리와 몸·다리가 반씩인 이등신 캐릭터여야 한다는 거였죠. 뽀로로 이름도 마찬가지예요. 슈펭, 포로포로, 뽀르르 등 갖가지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저는 펭귄이 친구들과 쪼르르 몰려다니는 모습을 연상하며 ‘쪼르르→뽀르르→뽀로로’로 굳혔어요. 다행스럽게 그 이름이 잘 먹혔어요.”
▶고집을 세우다 어려운 적은 없었습니까.
“독립해서 첫 작품이 수호요정 미셸이란 작품이었어요. 20억원을 투자했고 완성도도 뛰어났어요. 근데 깨끗하게 말아먹었죠. 작품성, 완성도만 따졌지,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몰랐던 거죠.”
▶그래도 재기가 빨랐네요.
“자본금 5억원짜리 회사가 20억원을 모아 투자했다 말아 먹었으니 당연히 어렵죠. 그래도 저는 근본이 낙천적이에요. 다른 캐릭터 사업으로 매출을 일으키며 버텨 나가다가 뽀로로에서 대박을 낸 거죠.”
◆"누가 '뽀로로 아빠' … 소송 중이지만 결과 걱정안해요"
대나무밥에 숭늉까지 먹고 차로 돌아오는 길에 묻고 싶었던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뽀로로 공동 제작사인 오콘(대표 김일호)과의 관계다. 오콘은 지난해 10월 서울지방법원에 아이코닉스를 상대로 뽀로로의 저작인격권 소유에 관한 소송을 제기했다. 쉽게 말해 누가 뽀로로를 창작했느냐를 가려 달라는 소송이다. 저작인격권은 뽀로로를 당초 기획 취지와 다르게 활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권리다. 오콘이 승소하면 뽀로로를 다른 상품으로 기획할 때 제약을 받을 수도 있다.
▶누가 진짜 ‘뽀로로 아빠’인지를 놓고 소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문제는 조만간 법원에서 결론이 나니까 길게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김 대표는 우리 회사 부하 직원의 친구죠. 그런 인연으로 뽀로로 제작에 합류하게 됐어요. 오콘 직원이 뽀로로 이미지를 그린 것은 맞아요. 하지만 디자인을 하기 위해 캐릭터의 특징, 외모, 이미지 등을 기재한 ‘디자인 가이드’를 아이코닉스에서 오콘에 전달했어요. 오콘은 그 가이드에 맞춰 작업을 한 것입니다. 캐릭터는 성격, 이미지, 이름, 목소리, 습관 등 모든 것들이 함축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미지를 그렸다고 뽀로로를 자신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최 대표는 소송 결과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그동안 부끄럽게 살지 않았고 앞으로도 순리대로 모든 것을 풀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서울로 접어들면서 부드러운 얘기로 끝맺음을 해야겠다 싶었다.
▶어떤 사업을 더 구상하고 계십니까.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우선 올해 중국에 법인을 만듭니다. 중국에서 직접 애니메이션도 만들고 캐릭터 상품도 팔고. 중국 정서에 맞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겁니다. 그 다음은 일본. 그리고 유럽 미국 순으로 전 세계를 상대로 시장을 개척해야죠.”
▶곳곳에 뽀로로 테마파크가 생기고 있던데.
“지난해 동탄과 신도림, 파주에 지었고 올해 안에 8~10개 정도, 내년까지 15개로 늘어날 거예요.”
그의 인터뷰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공 조미료를 치지 않은 전라도 음식같이 담백하게 진행됐다. 마지막으로 뽀로로를 히트시키고 얼마나 큰 돈을 벌었는지 궁금해졌다.
“돈요? 충분히 벌고 있어요. 그렇지만 아직 제 몫을 챙길 때가 아니죠. 뽀로로가 갈 길이 머니까. 뽀로로를 세계 시장에 내보내는 데 더 많이 투자해야죠.”
◆ 최종일 대표의 단골집 분당 고가(古家)
전라도 정통 한정식…10년 숙성 간장게장 '군침'
분당 고가(古家)는 17년된 전라도식 전통 한정식집이다. 주요 메뉴는 간장게장과 벌낙지구이, 궁중떡갈비 등 세 가지다. 그 중 으뜸은 10년 숙성 간장에 5~7일 담가 만든 게장이다. 게는 5월20일부터 말일까지 잡히는 오사리게만 쓴다. 알이 가장 많고 껍질도 단단한 때 잡은 게들이다. 윤정숙 고가 대표는 “껍질이 단단해 장에 오래 담가도 알과 살이 녹아내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4명이 먹을 수 있는 간장게장 한 마리에 4만5000원.
전남 고흥과 강진에서 바로 올라 온다는 벌낙지는 숯불에 살짝 구워내 양념없이 그냥 먹는다. 초장을 찍으면 낙지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없다는 것. 정식 가격은 2만5000원에서부터 12만원까지 다양하다. (031)707-5337~8
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
최종일 아이코닉스 대표 약력
▶1965년생 충남부여 ▶1991년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졸업▶1991년 금강기획 입사 ▶2001년 아이코닉스 엔터테인먼트 설립 ▶2003년 ‘뽀롱뽀롱 뽀로로’ 방송시작 ▶2009년 한국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 회장(현) ▶2009년 한일 문화교류회의 위원(현) ▶2011년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전문위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