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美·獨 등 부자 나라들의 힘은 제조업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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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C 영국 제조업 드라이브로 경제 권력 지금까지 누려
스페인은 농업보호 나섰다가 산업화의 혜택 못받아
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에릭 라이너트 지음
김병화 옮김
부키
500쪽 │ 2만원
스페인은 농업보호 나섰다가 산업화의 혜택 못받아
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에릭 라이너트 지음
김병화 옮김
부키
500쪽 │ 2만원
독일의 버스 운전사가 받는 실질임금은 나이지리아의 버스 운전사보다 16배나 많다. 에스토니아의 최신 휴대폰 제조공장 노동자는 유럽연합(EU)에 가입한 2005년에 시간당 1유로를 받았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프랑스 파리의 거리 청소부가 손에 쥐는 돈의 10분의 1도 안되는 수준이다.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임금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250여년 전인 1700년대 중반에는 나라별 생활수준 차이라고 해야 두 배 정도밖에 안됐다. 일의 강도나 숙련도는 비슷한데 사는 나라가 다르다고 임금이 차이나는 이유는 무엇을까. 이 임금차이 구조가 역전돼 가난한 나라의 실질임금이 잘사는 나라와 비슷해지거나 역전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노르웨이 출신 경제학자인 에릭 라이너트 에스토니아 탈린공대 교수는 《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를 통해 이런 질문에 답한다. 그는 주류에서 벗어난 경제학자들이 남긴 자료를 꼼꼼히 들춰가며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세계경제의 바탕 논리와 구조를 드러내 보인다. 그가 꼽는 부자 나라의 비결은 △제조업 육성을 골자로 한 산업정책 △원자재 독점과 못사는 나라의 원자재 공급기지화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앞세운 자유무역 및 세계화 등 세 가지다. 뒤집어 보면 가난한 나라가 여전히 못사는 원인이다.
라이너트 교수는 “도시와 국가의 부는 그들이 보유한 천연자원의 부와 반비례 관계에 있는 듯하다”고 운을 뗀 뒤 유럽 부자 나라들의 행보를 추적한다. 그는 경작할 만한 땅이 없어 제조업을 키우고, 해외무역에 적극 나섰던 네덜란드나 베네치아의 성공 메커니즘을 모방한 헨리 7세의 영국에 초점을 맞춘다.
청년기를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보내고, 1485년 왕위에 오른 헨리 7세는 한 지역, 한 분야의 기술발전이 나라 전체에 부를 확산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고는 영국에서 수입한 양모를 직조해 수출했던 부르고뉴방식대로 영국을 원자재 수출국이 아닌 직물 제조국으로 변신시키기 위한 정책을 단행했다. 직물 제조업을 위해 양모에 대한 수출관세를 부과하고, 숙련 직공과 기업가를 유치하는 등 다양한 정책수단들을 쏟아냈다. 영국의 이런 정책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100년 뒤 엘리자베스 1세 때는 영국에서 생산하는 양모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1696년에는 경제학자 캐리가 “스페인산 양모를 모두 사들인 다음 불태워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양모시장 지배력 강화를 역설하기도 했다.
스페인은 영국과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1700년대의 스페인은 제조업 강국이었다. 유럽에서 최고급 실크는 그라나다산이었고, 최고급 옷감은 세고비아산으로 통했다. 그러나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고부터 쏟아져 들어온 금과 은은 제조업에 투자되지 않았다. 자연히 산업화에서 멀어졌다. 지주들이 독점권을 갖고 있는 올리브와 포도주 수출에 만족하면서, 도시에서의 시너지와 노동분업이 와해됐다. 성공한 영국은 제조업을 보호했지만, 그렇지 못한 스페인은 농업을 보호하려다 제조업을 무너뜨렸다는 설명이다. 탈산업화가 농업 생산성까지 떨어뜨린다는 것은 2차대전 직후 독일에 적용됐던 ‘모겐소 플랜’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그런데 오늘날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부자 나라들은 이런 성공법칙을 외면했다. 가난한 나라들에 제조업을 육성하고 천천히 개방하라고 조언하는 대신 완전 개방과 자유무역, 탈규제를 하도록 몰아붙였다. 그 결과는 알려진 대로다. 에콰도르는 1990년대 중반 바나나 생산을 특화하고 산업관세를 폐지하면서 곤경에 처했다. 에콰도르는 농업이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이라는 미국도 보조금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란 점을 알았어야 했다. 스위스도 소 한 마리당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1인당 소득의 네 배나 되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2000년대 몽골은 그보다 더한 비극이 없었다. 몽골은 1991년 세계은행의 모범생으로서 갑작스런 경제개방으로 인한 산업의 몰락으로 나라가 거덜났다.
라이너트 교수는 “제3세계 문제의 해결책은 여전히 슘페터와 케인스 이론 안에 있다”며 “중미의 마킬라(보세임가공)기업에서 아프리카 성장기회법에 따라 고용된 여성까지 제3세계는 기술적으로 막다른 제품 생산에서 빠져나와야 하며 국가 생산시스템에 슘페터식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임금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250여년 전인 1700년대 중반에는 나라별 생활수준 차이라고 해야 두 배 정도밖에 안됐다. 일의 강도나 숙련도는 비슷한데 사는 나라가 다르다고 임금이 차이나는 이유는 무엇을까. 이 임금차이 구조가 역전돼 가난한 나라의 실질임금이 잘사는 나라와 비슷해지거나 역전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노르웨이 출신 경제학자인 에릭 라이너트 에스토니아 탈린공대 교수는 《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를 통해 이런 질문에 답한다. 그는 주류에서 벗어난 경제학자들이 남긴 자료를 꼼꼼히 들춰가며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세계경제의 바탕 논리와 구조를 드러내 보인다. 그가 꼽는 부자 나라의 비결은 △제조업 육성을 골자로 한 산업정책 △원자재 독점과 못사는 나라의 원자재 공급기지화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앞세운 자유무역 및 세계화 등 세 가지다. 뒤집어 보면 가난한 나라가 여전히 못사는 원인이다.
라이너트 교수는 “도시와 국가의 부는 그들이 보유한 천연자원의 부와 반비례 관계에 있는 듯하다”고 운을 뗀 뒤 유럽 부자 나라들의 행보를 추적한다. 그는 경작할 만한 땅이 없어 제조업을 키우고, 해외무역에 적극 나섰던 네덜란드나 베네치아의 성공 메커니즘을 모방한 헨리 7세의 영국에 초점을 맞춘다.
청년기를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보내고, 1485년 왕위에 오른 헨리 7세는 한 지역, 한 분야의 기술발전이 나라 전체에 부를 확산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고는 영국에서 수입한 양모를 직조해 수출했던 부르고뉴방식대로 영국을 원자재 수출국이 아닌 직물 제조국으로 변신시키기 위한 정책을 단행했다. 직물 제조업을 위해 양모에 대한 수출관세를 부과하고, 숙련 직공과 기업가를 유치하는 등 다양한 정책수단들을 쏟아냈다. 영국의 이런 정책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100년 뒤 엘리자베스 1세 때는 영국에서 생산하는 양모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1696년에는 경제학자 캐리가 “스페인산 양모를 모두 사들인 다음 불태워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양모시장 지배력 강화를 역설하기도 했다.
스페인은 영국과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1700년대의 스페인은 제조업 강국이었다. 유럽에서 최고급 실크는 그라나다산이었고, 최고급 옷감은 세고비아산으로 통했다. 그러나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고부터 쏟아져 들어온 금과 은은 제조업에 투자되지 않았다. 자연히 산업화에서 멀어졌다. 지주들이 독점권을 갖고 있는 올리브와 포도주 수출에 만족하면서, 도시에서의 시너지와 노동분업이 와해됐다. 성공한 영국은 제조업을 보호했지만, 그렇지 못한 스페인은 농업을 보호하려다 제조업을 무너뜨렸다는 설명이다. 탈산업화가 농업 생산성까지 떨어뜨린다는 것은 2차대전 직후 독일에 적용됐던 ‘모겐소 플랜’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그런데 오늘날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부자 나라들은 이런 성공법칙을 외면했다. 가난한 나라들에 제조업을 육성하고 천천히 개방하라고 조언하는 대신 완전 개방과 자유무역, 탈규제를 하도록 몰아붙였다. 그 결과는 알려진 대로다. 에콰도르는 1990년대 중반 바나나 생산을 특화하고 산업관세를 폐지하면서 곤경에 처했다. 에콰도르는 농업이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이라는 미국도 보조금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란 점을 알았어야 했다. 스위스도 소 한 마리당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1인당 소득의 네 배나 되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2000년대 몽골은 그보다 더한 비극이 없었다. 몽골은 1991년 세계은행의 모범생으로서 갑작스런 경제개방으로 인한 산업의 몰락으로 나라가 거덜났다.
라이너트 교수는 “제3세계 문제의 해결책은 여전히 슘페터와 케인스 이론 안에 있다”며 “중미의 마킬라(보세임가공)기업에서 아프리카 성장기회법에 따라 고용된 여성까지 제3세계는 기술적으로 막다른 제품 생산에서 빠져나와야 하며 국가 생산시스템에 슘페터식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