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 준 사람·받은 사람 모두 책임져라…국민 눈높이와 먼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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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정당정치, 신뢰회복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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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한나라당 비대위원(73)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당 쇄신에 대해 “여당 야당이 아닌 국가의 장래가 걸린 문제”라며 “비대위원도 나이 들어 구질구질하게 자리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보수 용어 폐기 등을 거론한 데 따른 당내의 거센 사퇴압력에 “눈 하나 깜짝 안 한다”고 했다.

그는 차기 대선의 유력주자인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한 평가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박 위원장에 대해선 ‘준비된 후보’라고 했고 안 원장에 대해선 ‘대선 주자가 되기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네 개 정권서 4선 의원과 청와대 경제수석,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냈다. 비대위 참여 직전까지 안 원장 멘토 중 한 사람으로 통했다. 그런 그가 보수당의 유력주자인 박 위원장과 손잡았다. 그는 보수·진보 정권 할 것 없이 개각 때마다 총리 부총리 후보로 거론돼왔을 정도로 이념적 스펙트럼이 넓다. 그를 지난 주말 서울 북악산 끝자락에 위치한 부암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나라당 비대위원으로 참여하기 전엔 무슨 일을 하고 있었나.

“양극화 해소에 대한 책을 쓰고 있었다. 이사장을 맡고 있는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사무실로 나와 하루종일 그 궁리만 했다. 다른 사람과 만남도 많지 않았다. 박 위원장과의 사전 만남도 없었다.”

▶비대위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1987년 헌법체제 하에서 정치는 민주화됐지만, 사회 갈등 구조는 더 심화됐다. 대표적인 게 사회 양극화 현상이다. 이 문제를 정당들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기존 정당 구조와 기득권에 안주하고 있어서다. 한나라당이 특히 심하다. 299석 중 170석 가까이나 차지한 한나라당은 이 문제를 외면하다 결국 이 지경까지 왔다. 그러던 중 박 위원장이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으려고 하니 도와 달라’고 했다. 한나라당을 도와 달라는 게 아니었다. ‘국가를 위해 협조를 바란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최대 정당이다. 국민이 안정적인 바탕 위에서 생활하려면 한나라당이 변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만약 민주통합당이 도와 달라고 했다면.

“야권이 통합 과정을 거치면서 너무 이질적인 요소들이 많아졌다. 시민운동가와 한국노총도 들어가 있다. 나쁘다는 게 아니라 색깔이 다른 사람들이 정권 창출을 목표로 혼합됐다는 얘기다. 그 안에선 내가 들어가도 안정적으로 당을 바꾸고 발전시키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 정강정책에서 ‘보수’를 삭제한다고 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보수라는 단어가 실질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러시아에선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지키는 게 보수다. 보수라는 용어는 사용여하에 따라 다르다는 말이다. 지금의 한나라당 전신 당들은 보수라는 말을 안 썼다. 2004년과 2006년 야당 때 당시 정권을 좌파라고 규정, 대립각을 세우며 들어간 말이다. 보수라는 말 자체가 대단히 중요한 가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당에서 이념을 없앤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세계에서 이념은 거의 사라졌다. 반면 우리는 21세기 들어와서도 보수냐 진보냐를 놓고 논쟁하고 있다. 요즘 자라나는 세대는 그런 개념이 없다. 관심조차 없다. 사안을 상식과 비상식으로 판단한다. 사고방식을 바꾸는 게 쇄신의 첫 발걸음이 돼야 한다. 보수라는 말을 들어낸다고 우파정당의 본 모습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단어에 구애를 받지 말자는 것이다. 독일 CDU(기민당)는 우리나라로 치면 보수정당이지만, 한때 이윤을 부정하는 정강을 갖기도 했다. 정강은 시대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포퓰리즘(대중적 인기영합주의)에 맞서’라는 문구도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안다.

“복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고,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사회 분란이 벌어지고 그렇게 되면 경제 효율도 가져올 수 없다. 그래서 복지 좀 더 하자는 건데, 이걸 포퓰리즘이라고 해버리면 그런 정당은 존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비대위원을 맡은 지도 열흘가량 지났다. 사실상 ‘김종인 체제’라는 말도 나온다.

“내가 공천에 관여할 사람도 아니고. 김종인 체제 운운은 중병 걸린 환자가 의사에 구원을 요청하는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부 반발세력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다. 인신공격까지 하고 있다. 치사해서 반박도 안 하고 있다. 그걸 두려워하면 쇄신을 못 한다.”

▶공격하는 쪽에선 다음 정권 총리를 노린다고 문제를 삼는데.

“웃기는 얘기다. 올해 73세다. 나는 내가 우리나라 발전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그걸 자부심으로 삼고 산다. 나이 들어서 구질구질하게 자리 바라고 그런 치사한 사람 아니다. 내가 비례대표 네 번이나 했다고 공격하는데, 내가 하겠다고 한 적 없다. 다 도와 달라고 해서 맡은 것이다.”

▶박 위원장은 속도 조절 쪽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최근 통계청 발표를 보면 국민의 45%가 하층민이라고 하고 58%가 희망이 없다고 얘기한다. 그걸 고치자는데 싫다면 방법이 없다. 나는 비대위원이 영광스러운 자리라거나, 권력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이달 안에 쇄신 기조가 보이지 않으면 (그만둘지) 판단할 것이다.”

▶27세의 이준석 비대위원이 화제다.

“27세면 어린 나이도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5세에 국회의원이 됐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도 20대에 정치 시작해서 30대에 당수도 되고 수상도 됐다. 이 비대위원의 얘기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이 KBS 수신료 인상안을 단독으로 처리하고 당내 선거에서 돈봉투가 오갔다는 폭로도 나왔다.

“쇄신과는 모두 거리가 먼 짓이다. 국민만 바라보고,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겠다고 하면서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KBS 수신료 인상안이 그렇게 국민에게 시급한 사안이냐. 돈봉투 사건은 검찰 조사와 별개로 진행돼야 한다. 돈을 준 사람뿐 아니라 돈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들도 모두 고해하고 검찰 발표와 상관없이 정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김 비대위원이 어느 편인지 궁금해 한다.

“나는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요청하는 사람이 원하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하고 조언하는 사람이다. 내가 노태우 정권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 할 때도 경제정책을 과감하게 했는데, ‘빨갱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재벌은 협박을 했다. 그게 두려워서 일을 못 한 적은 없다. 나라를 위해서 이렇게 가는 게 맞다 싶으면 내가 희생하고 밀고 나갔다. ‘편’의 문제가 아니다.”

"돈봉투, 준 사람·받은 사람 모두 책임져라…국민 눈높이와 먼 짓"
▶안 원장이 대선 주자로 적합하다고 생각하나.

“대선 주자가 되려면 한참 걸릴 사람이다. 대통령은 교수하다가 금방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본인에게도, 국민에게도, 국가에도 불행이다.”

▶최근 정치 행보를 보면 대선에 나올 것 같은데.

“(안 원장이) 그렇게 비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업하는 사람이니 상황 파악 잘할 것이다. 빌 게이츠가 대권하려고 기부재단 만들었나. 선의로 봐줘야 한다. 자기도 혜택 받았기 때문에 돌려주겠다는 말, 의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박 위원장에 대해 평한다면.

“지금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 중에서는 가장 오랫동안 준비했다. (박 위원장이) 자라온 과정을 보면 인간으로서 굉장한 고뇌를 겪었던 사람이다. 1998년 정계에 입문해서 당 대표도 지내고 어려웠던 한나라당 상황을 극복했다. 경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패한 뒤 흔쾌하게 승복하는 전통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이 되면 알아야 할 안보나 경제, 교육 등에 대해 많이 준비했을 것이다. 또 대통령은 물질에 탐욕이 없어야 하고, 주변이 간단한 사람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강점이 있다.”

▶현 정권의 문제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한국 사회나 정치·경제에 대한 상황인식이 정확하지 않았다. 상황 인식이 제대로 안돼 있으니 정책이 국민에게 호응을 받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소위 부자증세를 규정한 소득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기습 통과됐다.

“세제를 단편적으로 세율 하나를 고치는 건 비합리적이라 생각한다. 우리 경제 상황을 봤을 때 상징적인 의미에서 정치적으로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세금은 원래 정치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지금 세제는 재분배 기능을 도외시한 부분이 있다. 예컨대 간접세 비중이 높은 것도 그중 하나다. 간접세는 소득에 역진적인 면이 있다. 우리나라는 간접세 비중이 미국, 일본, 대만에 비해 크게 높다. 이런 세제가 계속되면 양극화가 더 커진다. 이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지만 비대위에선 이런 일을 하기 힘들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어렵고, 다음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재후/도병욱 기자 hu@hankyung.com

■ 김종인 위원은 '경제민주화' 헌법 규정 만든 원칙론자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주정의당과 민주자유당에서 세 번, 민주당에서 한 번 국회의원을 한 4선 의원 출신이다.

노태우 정부에서 보건사회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개혁성향의 경제통이다. 이후 보수 개혁정부에 관계없이 개각 때마다 총리나 부총리 후보로 거론돼왔다. 이념 스펙트럼이 그만큼 넓다는 의미다.

그는 원칙주의자, 합리적 보수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원칙을 강조하는 소신 때문이다.

경제에 관한한 개혁 성향이 강하다. 자신의 소속과 무관하게 경제 개혁과 경제 민주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1987년 경제 민주화를 규정한 헌법 119조2항을 만든 것도 그였다.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와 재벌의 비업무용 토지 매각을 유도한 5·8 부동산 조치 등도 그의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던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손자다. 중앙고와 한국외대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 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