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매스킨 하버드대 교수는 “소프트웨어 기업들 간 특허 전쟁의 유일한 수혜자는 변호사이고 소비자에겐 피해만 끼친다”며 “애플과 삼성의 특허 전쟁에서 나는 삼성 편”이라고 7일(현지시간) 말했다. 200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매스킨 교수는 이날 미국경제학회 연례총회가 열린 미국 시카고 하얏트호텔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갖고 “미국 경제는 완만한 회복세에 들어섰으며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누가 이기든 재정지출을 늘릴 것이기 때문에 경기가 급속도로 좋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지티브 규제 창의성 저해

정부규제 등이 경제주체들의 행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메커니즘 디자인’으로 200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매스킨 교수는 “과도한 규제는 너무 적은 규제만큼 좋지 않다”며 “한국의 규제 시스템인 포지티브 규제(할 수 있는 행위를 열거하는 방식)는 경제 주체들의 혁신성과 창의성을 침해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금융회사의 과도한 리스크 감수를 제한하는 새 금융규제법안인 도드-프랭크법에 대해 “전반적으로 옳은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은행들이 레버리지(차입)를 통해 올린 수익은 100% 은행 것이지만, 만약 손해를 보면 돈을 빌려준 다른 은행에도 그 손실이 돌아가 금융시스템이 연쇄적으로 붕괴되는 외부효과(externality)가 생긴다는 것. 그러나 은행들은 외부효과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차입에 대한 유혹을 받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따라서 규제를 통해 차입비율을 제한하는 도드-프랭크법은 맞는 방향”이라며 “도드-프랭크법의 문제는 이 같은 규제를 큰 은행들에만 적용한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캐나다의 경우 은행 차입비율을 20%로 제한하되 다른 간섭을 하지 않는 규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며 “덕분에 캐나다의 금융산업은 매우 역동적이면서도 미국 은행들이 붕괴될 때 끄떡없는 안정된 면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매스킨 교수는 이어 “과도한 규제를 가진 한국과 너무 적은 규제를 가진 미국은 이 같은 캐나다의 단순하지만 강력한 규제 시스템을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 경기 완만한 회복…대선 후 빨라질 것

매스킨 교수는 올해 세계 경제에 대해 “미국은 느리지만 최소한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문제는 유럽 지도자들이 정치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문제가 해결되면 유로화는 훨씬 강력해질 수 있다”며 “하지만 문제를 풀지 못하면 2012년은 좋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스킨 교수는 이어 “유럽의 지도자들은 지난 3년 동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다”며 “그들을 더 이상 믿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와 관련해서는 “12월 실업률이 8.5%로 하락한 데에는 구직포기도 영향을 끼쳤지만 고용과 생산이 늘어나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기침체의 원인인 주택시장에서도 회복세가 나타나고 있다”며 “미국 경제가 완만한 회복세로 접어든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정부가 인프라, 교육 등에 재정지출을 확대하면 회복세는 더욱 빨라질 수 있지만 아쉽게도 정치적 마비 때문에 11월 대선까지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스킨 교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되면 이 같은 재정지출 확대를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경기침체 시에는 재정적자를 늘리고 경제가 살아나면 다시 적자를 줄여야 한다는 것은 주류 경제학자라면 모두 동의하는 사실”이라며 “현재 가장 유력한 공화당 대선 후보인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당선되더라도 (공화당 내 강령론자들의 반대가 있겠지만) 재정지출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선거가 끝나면 미국 경제의 회복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소송요건 까다롭게 특허법 새로 써야

매스킨 교수는 “소비자들은 애플 운영체제(OS)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간 경쟁을 통해 낮은 가격, 다양한 제품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허전쟁은 이 같은 경쟁을 저해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애플도 타 업체와의 경쟁을 통해 스스로를 혁신할 수 있다”며 “애플은 특허소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과대평가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매스킨 교수는 다만 “모든 특허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며 “예컨대 막대한 투자를 통해 하나의 제품을 개발하는 제약산업은 특허를 통해 보호하지 않으면 인류에 꼭 필요한 약들이 발명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소프트웨어의 경우 하나의 큰 발견이 아니라 작은 발견들이 모여 점진적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특허로 보호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주장했다.

매스킨 교수는 “따라서 의회는 과도한 특허경쟁과 소송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보고 업계의 혁신이 늦춰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소송 요건을 까다롭게 하는 방향으로 특허법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카고=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