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산시에 있는 자동차부품업체 K사. 이 회사는 지난해 고용노동부로부터 ‘불법 노동’을 시켰다는 이유로 고발을 당했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넘겨 직원들에게 일을 시켰기 때문이다. 생산직 172명 가운데 143명이 주당 12시간인 근로한도를 넘겼다. 일부 근로자들은 이틀에 한 번꼴로 철야 근무를 했다.

[일자리가 복지다] 정규직은 일이 너무 많고 시장엔 실업자가 넘쳐나고…

◆‘정규직의 장시간 근로’

한국은 거의 모든 제조업체들에서 근로자들의 장시간 근로가 일상화돼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2193시간(2010년 기준)으로 OECD 회원국들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대부분 유럽국가들의 연간 근로시간은 1400~1600시간 정도다. 일을 많이 한다는 일본(1754시간)이나 미국(1786시간)보다도 한국의 근로시간은 훨씬 많다.

문제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만 과도하게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5세 이상 생산가능인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인 고용률은 한국이 63%로 OECD 회원국 가운데 하위권이다. 노르웨이(75.4%) 스웨덴(72.7%) 덴마크(73.4%)등 북유럽 국가들은 물론 네덜란드(74.7%) 독일(71.2%) 영국(70.7%) 등에도 크게 뒤진다. 미국(66.7%)이나 일본(70.1%)에도 못 미친다.

◆‘해고 경직성’이 일자리 걸림돌

한국의 일자리는 ‘정규직에 편입된 사람들이 과도하게 일을 많이 하는 구조’다. 가장 큰 이유는 고용 인원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경기가 좋을 때 고용을 늘렸다가 나중에 커다란 짐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해고하기 어려워 사람을 뽑지 않는다. 늘어나는 생산물량 주문을 맞추기 위해 ‘신규 채용’을 하기보다는 ‘초과근로’를 시키는 것을 기업들은 선호한다.

노동자 입장에서도 초과근로는 통상임금의 150%가 지급되기 때문에 나쁠 게 없다. 초과근로수당을 받기 위해 철야근무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노조의 보호를 받는 정규직 근로자들은 높은 수당에 이끌려 장시간 근로를 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을 더 채용하는 데 들여야 할 돈을 기업과 기존 근로자들이 나눠먹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부분 기업들은 일감이 몰릴 때 근로기준법을 어기면서까지 초과근로를 시키고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근로시간 한도를 초과해 일을 시킨 기업주는 ‘2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을 받는다. 하지만 실제로 처벌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근로자들의 동의를 받아 행해지는 초과근로는 형사고발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초과근로 없애니 직원 4% 고용창출

정부는 최근 들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초과근로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노동부는 법에서 정한 한도를 초과해 일을 시키는 기업을 사법처리하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기업들이 형사고발을 무서워해 채용을 늘리는 사례가 최근 많아진 이유다.

고용부가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장시간 근로를 적발한 424개 업체들에서 ‘근로시간 단축’이 이뤄졌고 3179명의 근로자가 신규 채용됐다. 이들 업체에서 일하는 전체 근로자 7만8728명의 4%에 이르는 규모다.

예컨대 광주광역시 자동차부품업체 H사는 생산직 65명이 법정 근로한도를 초과해 일을 해오다 적발돼 사람을 9명 더 뽑았다. 근로시간이 줄어들자 생산성도 3%포인트가량 높아졌다고 한다. 부산 기장군의 시트히터 제조업체 K사는 128명인 생산직 근로자의 주당 근로시간을 54.4시간에서 49시간으로 줄였다. 대신 19명을 고용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미래전략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초과근로를 근로기준법 규정(주당 40시간)에 맞춰 없애면 56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된다. 일자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감을 과도하게 몰아주는 것을 해소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문제는 초과근로가 줄어드는 데 따르는 노동자들의 소득감소, 신규 추가고용에 따른 기업들의 비용 증대다. 일감이 줄어도 해고할 수 없는 지금 상황을 그대로 둔 채 기업들에 신규 채용만 늘리라고 강요하는 것도 문제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과도한 근로시간을 줄이면 임금손실이 불가피하게 발생하겠지만 생산성 향상으로 일부는 보전할 수 있다”며 “기업이나 정규직 노조 모두 대승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